슬기로운 결혼 생활
부부는 매일 아침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밤마다 같은 침대에 눕습니다. 주말이면 함께 장을 보고, 명절에는 함께 고향에 갑니다. 겉으로는 다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대화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상합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아이 학원비 냈어?", "주말에 차 점검받아야 해." 실용적인 정보 교환만 있을 뿐입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닫습니다. 배우자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꿈꾸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죠.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지만, 정작 상대방의 내면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입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멉니다.
많은 부부가 이런 역설 속에 살아갑니다. 시간은 충분히 보냈는데 왜 친밀감은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함께 있어도 왜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아래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결혼 15년 차인 재민과 혜진 부부는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재민은 IT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혜진은 중학생 쌍둥이를 키우며 파트타임으로 번역 일을 합니다. 저녁이면 가족이 모여 식사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운 가정입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재민이 회사에서 돌아왔습니다. 표정이 어둡습니다. 혜진이 물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재민은 짧게 답했습니다. "아니, 피곤해서." 혜진은 더 묻지 않았습니다. '말하기 싫은가 보다' 생각하고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재민은 그날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큰 실수를 했습니다. 3개월 동안 준비한 제안서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수치심과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말할까? 아니, 걱정만 끼칠 텐데. 약한 모습 보이기도 싫고.'
혜진도 힘든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 문제로 싸웠고, 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재민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그도 피곤해 보여서 참았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굳이 말할 필요 없지.'
그날 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웠습니다.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불과 30센티미터 떨어진 거리였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각자의 세계에 갇혀, 외롭게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며칠 후 혜진은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재민의 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남편이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그로부터 재민의 실수 이야기를 들은 겁니다. 혜진은 충격받았습니다.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지?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인가?' 섭섭함과 상처가 밀려왔습니다.
재민도 나중에 혜진의 어머니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왜 이런 중요한 일을 말하지 않았지? 나를 배려하려고? 아니면 나를 신뢰하지 않는 건가?'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더 두꺼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친밀감을 시간의 함수로 착각합니다. 오래 함께 있으면 부부 사이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친밀감의 본질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질에 있습니다.
시간의 양 vs 교감의 깊이
10년을 함께 살아도 표면적 대화만 나누는 부부가 있습니다. 반면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됐어도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부부도 있습니다.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교감의 깊이입니다. 교감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표면 아래 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읽고, 말하지 않은 의미를 헤아리고, 상대방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입니다. 이런 깊은 연결은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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