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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는 부하가 아니다.

슬기로운 결혼 생활

by 인생짓는남자

아침에 일어나니 새 차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어제까지 없던 차입니다. "차 샀어?" 물으니 "응, 괜찮지?"라는 답변만 돌아옵니다. 수천만 원짜리 구매를 혼자 결정했습니다. 상의는 없었습니다. 주말 저녁, 갑자기 친구들이 집에 옵니다. "오늘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어." 미리 말한 적이 없습니다. 준비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당황스럽지만 이미 벨이 울립니다. 월요일 아침, 이사 계획을 듣습니다. "다음 달에 이사 가기로 했어." 언제 집을 알아봤는지, 계약은 언제 했는지 모릅니다.


많은 배우자들이 이런 경험을 합니다. 큰 결정도, 작은 결정도 혼자 내려집니다. 의견을 물어보는 일이 없습니다. 알려주기만 합니다. "이렇게 하기로 했어", "이미 결정했어", "괜찮을 거야." 상의가 아니라 통보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배우자를 동등한 파트너로 보지 않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순한 습관일까요? 이 태도가 부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5천만 원짜리 통보


(아래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영수와 지은 부부는 결혼 8년 차입니다. 영수는 능력 있는 사업가였습니다. 빠른 판단력으로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직장에서는 리더였고, 모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습관이 집에도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영수가 말했습니다. "여보, 사업 확장하려고 5천만 원 투자하기로 했어. 좋은 기회야." 지은은 놀랐습니다. "뭐? 언제 그런 계획이 있었어?" 영수가 대답했습니다. "지난달부터 알아봤어. 괜찮을 거야." 지은이 물었습니다. "나한테는 왜 말 안 했어? 우리 돈인데..." 영수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업 모르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마." 지은은 무시당한 느낌이었습니다. 5천만 원은 적지 않은 돈입니다. 가족의 미래가 달린 결정입니다. 그런데 상의 한마디 없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큰 가전제품을 혼자 샀고, 보험을 혼자 가입했고, 아이 학원도 혼자 정했습니다. 작은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말 계획, 저녁 메뉴, 집안 인테리어. 모두 영수가 결정했습니다. 지은은 점점 무력해졌습니다.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나 봐", "나는 이 집에서 뭐지?", "그냥 영수 결정을 따르는 사람?" 자존감이 떨어졌습니다. 결혼 생활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폭발했습니다.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부하 직원이야? 당신 결정만 따르라고? 나도 이 가정의 주인이야!" 영수는 당황했습니다. "나쁜 의도가 아니었어. 그냥... 내가 잘 아니까 알아서 한 거야." 지은이 울며 말했습니다. "잘 아는 게 문제가 아니야. 나를 무시하는 게 문제야.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잖아. 나는 당신 직원이 아니라 배우자야."


상담을 받으며 영수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를 배제했다는 사실을. 능력 있는 리더가 되려다가 무례한 배우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동등한 파트너십이 아니라 상하 관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왜 배우자를 부하처럼 대할까?


배우자를 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행동에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직장 습관의 연장


직장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회사에서는 빠르게 결정하고, 지시하고, 실행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이 패턴이 무의식적으로 가정에도 적용됩니다. 하지만 가정은 직장이 아닙니다. 배우자는 부하가 아닙니다. 회사에서는 위계가 있지만, 부부는 동등합니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가정에서도 상사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효율성 추구의 함정


"내가 더 잘 아니까", "빨리 결정하는 게 좋으니까", "상의하면 시간만 걸려." 이런 생각으로 혼자 결정합니다. 효율적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닙니다. 빠른 결정보다 중요한 건 함께 내린 결정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두 사람이 합의한 결정이 관계를 강화합니다. 혼자 내린 빠른 결정은 관계를 약화시킵니다.


무의식적 우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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