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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선 Dec 28. 2022

괘종시계의 일기

고장 난 물건의 마음


 ⁠ 물건은 필요하거나, 자주 쓰여서 존재를 증명한다.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나의 쓰임이다. 나처럼 사명감이 뚜렷하거나 혹은 사람의 애정을 많이 받는 사물은 자아를 가지기도 한다. 잠시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1980년대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작은 괘종시계다. 당시에는 집에 있는 괘종시계의 크기가 클수록 잘 사는 집이었다. 나 말고도 뻐꾸기가 문밖으로 나오는 시계도 국민시계로 유명했다. 지금은 심플한 게 유행이기도 하고 시계도 숫자로 보는 게 편리한 디지털 세대가 되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창고로 보내져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곳은 어둡고 축축하기도 했지만 나처럼 쓰임을 다했거나 가끔 사람들이 찾는 물건들이 가득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창고에서도 시간이 잘 갔지만 낡은 톱니 사이로 녹이 슬고 먼지가 끼여 점점 시간이 늦게 갔고 이윽고 멈춰 서기에 이르렀다. 초침에 힘이 없어서 떨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째깍거리려고 애썼지만 마지막에는 배터리도 수명을 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멈췄다.  갈지 않은 건전지에 계속 녹이 슬었으므로 아마 건전지를 바꾼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터였다. 내가 멈춘 시간은 오전 11시 5분이었다. 55분 뒤 정오에 댕댕 종을 울릴 예정이었으니 오전인 것이 맞다. 다른 물건들은 모르지만 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안다. 내가 하던 일이므로 초침과 분침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체감할 수 있다. 캠핑용품이나 카펫 같은 것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비록 멈춰버리고 말았지만.


  각설하고, 그런 내가 이 카페에 있는 이유는 주인이 결국에는 나를 창고에서 꺼내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려진 것이 쓰이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오전 11시 5분에서 시간이 더는 가지 않았지만 이사하며 버려진 짐들 사이에서 내 새 주인은 나를 들었다. 그녀는 후 하고 한번 입김을 불고 소매로 슥슥 닦았다. 앞 뒤를 살피더니 건전지 쪽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덥석 들고 여기로 왔다. 이곳은 카페였고 새 주인은 시침과 분침을 역시나 조절하지 않은 채로 나를 걸레로 닦았다. 보존하려는 듯 버려진 그대로 조심스레 걸었다.

 

  사람이 찾지 않을까 봐 항상 걱정하는 쪽은 물건이다. 나는 어차피 보는 것이지 사람들이 찾고 만지는 물건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는 면이 있다. 그래도 멈춘 시계에 대한 시선은 어떨 때는 억울하기까지 하다.


"아 뭐야. 이 시계 멈췄네."


  내 앞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아래 콘센트에 노트북 충전기를 연결하고는 30분째 앉아 무언가를 쓰는 중이었다. 잠깐 고개를 들어 기지개를 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화들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노트북으로 시계를 확인하고는 안심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왜 멈춘 시계를 둬서는."


  투덜 대는 남자에게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나는  시간이 가지 않는 고장 난 시계이므로 할 말이 없다.(입이 열개라면 말했을 수도 있다. 나는 입이 없다.) 손목에도 디지털시계가 있고 휴대폰도 있는 남자가 나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조금 웃겼다.


  나도 제대로 된 시간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시간을 알려주는 게 아닌  인테리어 목적만이 남았다는 것이 서글퍼진다. 창고에 있을 때 디지털시계는 틀릴 일이 없다는 소문을 선풍기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만나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만 했다. 저 노트북은 전원이 꺼져도 다시 켜면 시간은 틀리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질투가 난다. 조금 더 외로워졌다. 나 때는.. 아니다. 이것도 다 옛날이야기라고 했다.


  쓰이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옆에 있는 서랍장 위의 책이 자신보다는 낫지 않냐고 투정 부렸다. 자신은 여전히 책이고, 책 표지 안쪽에 내용도 멀쩡하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고는  아무도 들춰본 적이 없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쓸모가 있는 게 나은지 없는 게 나은지 알 수 없어진다. 멀쩡한 데 쓰이지 않는 것과 고장 나서 쓰이지 않는 것은 중 어느 쪽이 더 지옥일까. 전시되는 입장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오케이. 시간 맞춰 보냈고."


   남자는 시간에 맞춰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수행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내게 화가 날 법도 했군. 그 순간 카페 문에서 딸랑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남자 앞에 앉았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일했어. 잘 맞춰서 왔어."

 

  둘은 커플이었다. 남자는 나를 노려본 것과는 달리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중에 다시 켜도 시간이 틀리지 않고 정확할  노트북을 끄고 가방에 넣은 뒤 여자의 커피를 주문하러 함께 일어나기까지 했다. 여자는 커피가 아닌 따뜻한 홍차를 주문했다. 홍차는 티팟세트와 함께 내어져 왔다. 여자는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몇 장인가 찍었다.  투정 부리던 책이 있는 서랍장도 찍고, 반대편의 흔들의자도 찍었다. 남자는 휴대폰을 바꿔 들어 여자를 찍었다. 폰 카메라에는 여자가 찍은 것들이 아닌 여자만이 담겼다. 나는 그것을 보며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침대는 두 달 더 있어야 온대."

"뭐? 그럼 한 달은 침대 없이 살아야 돼?"

"그런가 봐."

"왜 그렇게 오래 걸려?"

"그 침대가 인기가 많아서 그렇대."


  여자와 남자는 다음 달에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둘은 청첩장 샘플을 꺼내 들고 어떤 것이 예쁜지를 골랐다. 남자는 다 예쁘다면서도 두 개를 골랐고 최종 선택은 여자가 했다.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핸드백에 청첩장을 집어넣고는 나를 봤다.


"시계가 멈춰있네?"

"어. 아까 저거 때문에 깜짝 놀랐어. 거래처에 메일 넣기로 한 시간에 늦은 줄 알고."

"아무리 그래도 11시 5분인데? 지금은 오전도 아니고 밤도 아닌데 헷갈렸단 말이야?"

"웃지 마. 급한 거였어. 시계 볼 시간이 없을 만큼."

"시계는 일하면서 으로 보면 됐잖아."


  맞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라니까? 그 정확한 디지털시계나 보라고. 여자는 놀리듯 말하며 웃었다.


"근데 예전에 우리 집에 있던 시계랑 비슷하다. 오빠네 집에도 저런 시계 있었어?"

"우리 집은 뻐꾸기."

"뭔지 알 것 같다."


  여자는 조금 웃다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남자에게 말했다.


"괘종시계 살까. 서재는 저런 분위기 괜찮을 것 같아."

"요즘 방마다 시계 있는 집이 어딨냐던 김혜진 어디 가셨어요?"

"몰라. 이제 걔는 없어. 본가에 살 때 생각나서 좋을 것 같아. 레트로 하고."


  그 순간 나는 울 뻔했지만 눈이 없으므로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외로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시계를 검색해서 남자와 한참을 골랐다. 그러는 사이 홍차는 너무 우러나와서 조금 쓸 것 같았다. 얼른 마시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소리 낼 수 있을 때가 그리웠다. 그래도 나 같은 시계를 아직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결혼하는 거 너무 좋기는 한데 낯설었거든. 내 물건 다 들고 가도 가구랑 가전제품 같은 게 주는 이질감 같은 거 있잖아."

"시계 사면 괜찮을 것 같아?"

"응. 글 쓸 때 보면 좋을 것 같아. 아빠 생각난다."


  여자의 아빠는 암으로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여자가 아빠와 오래 함께한 집에 있던 시계와 내가 닮았다고 했다. 시계는 엄마가 혼수로 산 물건 중에 하나였는데 고장이 잘 나지 않아 오래 썼다고 했다.


"아빠가 시간 때문에 잔소리 많이 했거든. 저녁시간 되면 얼른 밥 먹어라. 학교 지각하겠다. 일어나라. 늦겠다. 빨리 준비해라."

"나도 다 들어본 얘기네."

"들을 수 있을 때 부모님한테 잘해."


  시계 때문에 아빠생각날 줄 몰랐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휴대폰을 뒤적거렸다. 남자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잡아주었다. 남자와 여자는 그 후에도 몇 가지 사항을 조율했다. 한참 전에 식고 너무 많이 우러나버린 홍차를 마시고 나갔다. 남자는 나가기 전 나를 한 번 보고는 집하고 꽤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여자에게 말했다.


  남자가 들어온 지 2시간 13분 만에 테이블이 비었다. 몇 명이 더 카페에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여전히 11시 5분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11시 5분일 것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나를 보는 사람도 가끔 있고 나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시간을 나타내지 못하는 채로 시간이 간다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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