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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Nov 16. 2015

피르스트 / 융프라우

in First / Jungfrau

* 20150914


호스텔에서 조식을 준다는 한국 처자의 얘길 듣고 같이 내려갔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 식사. 커피까지 풀서비스다. 분명 저 앞에 도시락까지 만들어가진 마세요라고 써있는데 이 아가씨 당당하게 빵 하나 샌드위치 만들어서 휴지로 감싼다. 장하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중국인 관광객들. 이틀이나 같이 잘건데 사진이나 찍자고 해서 찍었다. 찍사는 한국 처자.


피르스트에 가기로 했다. 피르스트역은 케이블카라 기차역과는 거리가 있는데 이 사이에 상점들이 꽤 쪼로록 있다. 여기서 결국 스위스 나이프를 하나 샀다. 원래 아껴서 살아야 했는데 융프라우 패스와 유스호스텔 모두 신용카드로 살 수 있어서 정작 이제 현금이 남는다. 스위스 프랑은 남아도 어디 쓸데가 없는데 -_- 그래서 그냥 나이프를 현금내고 샀다. 과연 남은 사나흘간 얼마를 더 쓸런지.


그린델발트에는 거대한 마트가 있었는데 여기 중고물품 거래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가면서 먹을걸 산다. 쿱에 들러서 무화과 말린걸 산게 나름 수확이다. 나는 무화과가 좋거든. 헬싱키에서도 말린 무화과를 사서 우물우물 먹고다녔다. 또 가면서 빵집이 있길래 빵도 좀 사고. 가방엔 죄 간식과 음료수 뿐이다. 왜 이리 되었는고 하니 돌아다니다보면 생각보다 먹을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들이 쿱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도 많다. 이래저래 혼자 다니면서 멀쩡한 밥 씹기는 애매하다. 그러다보니 빵과 육포, 야채(파프리카 ㅋㅋ), 견과류 등을 사서 식사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멀쩡한 식사는 하루에 한두번 하나보다. 독일의 케밥이 그리울 지경. 인터라켄에도 케밥이 있었지만 알프스에는 없네 ㅎㅎ



오후에 움직이면서 소들을 여러번 봤는데 내가 먹는게 소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움직이면서 우물우물 먹고 있으니까. 잠시 앉아 쉬면서 먹기도 하고. 뭐 어찌되었건 나름 영양을 생각하면서 먹고있다. 채소와 고기의 비율을 맞추면서 나름 음료수도 당근주스 이런걸 먹는다거나. 뭔가 소와 큰 차이가 없는거 같기도 하다. 오늘 일찍 들어와서 호스텔에서 파는 저녁식사를 해봤지만 그게 고작해봐야 피자와 샐러드. 이상한 멀건 국물과 애매한 푸딩 디저트. 먹다보니 한국의 국물 문화가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 다시 느껴진다. 융프라우 올라가서 쿠폰내고 얻어먹은 신라면 국물도 몸에 나빠서 그렇지 저녁에 먹은 멀건 이상한 국물보다 훨 맛있었다. 세계사에서 일본은 귀여움과 오덕질을 담당하고 독일은 기계랑 맥주 만들기를 담당하면 한국은 야근과 국물을 담당하는거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산다.


피르스트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찍은 사진


피르스트는 케이블카를 세번이나 타야 가는 곳이었고 거기서 한시간정도 걸으면 호수가 나온다. 우람한 산세가 자랑하는 곳이 아니고 낮은 초지가 텔레토비 동산처럼 깔려있는 곳이다. 그래도 초지 치고는 높은 곳이어서 나무가 없고 아래에 있는 풀들에 비해 뭔가 바랜 색을 띠고 있다. 뭔가 소들도 좀 더 마른거 같나... 하면서 열심히 걸어갔더니 다 왔다. 호수가 생각보다 크진 않다. 물에 손을 넣어봤더니 물은 정말 차갑더라만. 수박 담궈놓고 싶은 온도였다. 


중간에 레스토랑이 있었고 거기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 아래에 안개가 끼어있고 내 머리 뒤쪽에 해가 떠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런 희한한 셀카를 하나 찍을 수 있었다.


오는 길에 구름이 몰려왔다가 다시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친 공기와 따듯한 공기가 교차한다. 햇빛의 양은 구름이 정하고 그에 따라서 공기 온도가 확확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는 자연의 힘을 정말 잘 느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사방에 자연의 작품들이 즐비하니까.


소떼샷을 찍고 싶었는데 그건 또 안쉽더라고. 이놈들 목에 달린 종소리가 좋았다.


일본 아이가 우는걸 보았다. 뭔가 수틀렸는지 크게 크게 울었다. 그러다가 부모가 어르고 달래서 곧 멈추었다. 이번 여행에서 애가 우는건 한 세번쯤 본거 같은데 사실 나는 그놈에겐 미안하지만 애가 울면 웃게된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나름 절박한 의사표현인데 웃으면 쓰나 싶지만. 제일 인상적이었던 꼬마는 며칠전 침제의 궁전에서 넘어졌던 여자애였는데 넘어진 다음 혼자 일어나더니 주변에 엄마가 없다는걸 보고 당황해서 일단 울려다 멈췄다. 그리고 엄마를 발견한 뒤 엄마에게 달려가서 그제야 운다. 애들도 울어야 할 타이밍을 봐가면서 우는 것이다. 나는 과연 분위기를 봐가면서 살고나 있나 싶었다.


두 호수의 물 색깔이 달랐다.



호수까지의 거리가 꽤 되어서 얼른 융프라우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또 기차를 탔다. 융프라우 기차가 놀라운건 이 말도 안되는 터널을 백년전에 뚫었다는 것이다. 세이칸 터널만큼이나 드라마틱한 토목공사다. 가보니 돌아다닐만한 환경도 아니고 나갈수도 없게 되어있어서 만년설 맛만 보고 나오는 건데, 역시 워낙 높은 곳이다보니 눈보라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난리통이더라. 도대체 왜 인간은 이런 곳을 네발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인지. 뭐 거기 있으니까 간다고 치자. 그건 그렇고 실내는 너무 상업화가 되었다. 그린델발트 상점가의 축소판.


기차 안에서 팔을 내밀어 찍어보았다.


그래도 나름 고산지대라고 어지러운 적이 두번정도 있었고 그래서 그럴때마다 좀 천천히 걸으면서 뭔가 씹었다. 생각만큼 아주 춥거나 하진 않았다. 그 와중에 까마귀가 융프라우 정상까지 올라와서 과자 달라고 깐죽거리는데 얘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난 과자가 없어서 건포도를 줘봤더니 이것도 먹는다. 참 대단한 놈들이다.


융프라우 까마귀 놈들.


새 하니까 생각나는데 아까 그린델발트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참새를 보고있었다. 참새는 해로운 새라지만 나는 볼때마다 참 귀엽다고 생각한다. 참새는 다리가 두개지만 걷지않고 튄다. 뛰는 것도 아니고 통통 튄다. 그라다가 잽싸게 날아서 도망가는데 걷지 않아도 다리가 이동 역할을 충실히 돕는다는게 새삼 놀라웠다. 2002년에도 박물관 의자에서 참새를 멍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흔한 만년설.


눈인지 구름인지.


춥긴 춥다.


기차를 타니 급 잠이 쏟아져서 쿨쿨 잤다. 고산지대에 좀 있어서 지쳤나보다. 그린델까지 와서 신속하게 호스텔로 들어왔다가 공짜 조식에 비해 성의없는 석식 피자를 먹은게 오늘의 마무리. 내일은 구경을 마무리한 다음에 로잔으로 간다. 가서 얼마나 있을지는 또 미정 ㅋㅋ 하루살이다. 


융프라우 정상에는 얼음궁전을 만들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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