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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Dec 01. 2015

로잔 / 비베

in Lausanne / Vevey

* Interlaken - Lausanne

* 20150916


로잔은 떡과 똥을 함께 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좋은 날인지 아닌지 좀 헷갈린다. 하지만 떡쪽이 오래 기억날 것 같다.


bookshop from nothing. 불어를 모르므로 스킵이지만 서점은 항상 들어가고 싶다.



좀 더 큰 규모의 도서관도 있었다. 가보고 싶었지만 들르질 못했네.


아침에 눈떠서 바닷가로 가봤는데 별게 없었다. 아무래도 비교적 큰 도시니까 그만큼 바닷가엔 뭐가 많고 그러다보니 고즈넉한 분위기는 없다. 바닷가에 가면 항상 뭘 집어먹었으니까 오늘도 예외없이 과자를 까먹는 차에 참새들이 몰려온다. 호구로 보이나보다. 까마귀도 와서 참세들을 갈구기까지 한다. 과자를 부숴서 주다가 큰걸 하나 줘봤더니 먹지도 못한다. 다시 그걸 부숴주니까 그제서야 집어먹는 웃긴 녀석들. 


뭐라도 주워먹겠다고 모여든 참새들.


레만 호수. 저 건너편엔 프랑스 도시 에비앙이 있댄다.


채플린이 만년을 보낼만큼 이쁘다는 비베에 가보기로 했다. 기차로 20분 거리. 비베도 역 앞은 생각보다 컸다. 


채플린이 산책하곤 했었다고.


바닷가로 가야지 싶어 이동하는 중에 서점을 하나 보았는데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소도시에서 발견하는 예쁜 서점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다. 어떤 박물관 못지않게 매혹적이다. 읽을수 없어도 상관없다. 책의 배치와 옛날 책들만이 가진 판형, 디자인 등을 보는게 즐겁다. 헬싱키 갔을때도 그랬다. 지하 어딘가에 개미굴처럼 배치된, 옛날 책들이 차곡차곡 쌓인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 여기는 골동품과 기념품을 함께 팔기 때문에 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느낌이 있다. 뭐라도 사주고싶어서 CD를 하나 겨우 집어들고 계산했다.



복층 구조를 이쁘게 잘 살렸던 서점.


한국이었으면 돈이나 벌 수 있나 걱정했을텐데 여기는 너무 공간을 낭비해가며 살고있다.


나오니 비가 오네? 그래도 모자 뒤집어쓰고 걸었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멈춘다. 음 쉽게 안멈춘다 싶었으나 커피가게 가서 커피한잔 마시고 나니 결국 멈췄다. 걸어보니 아주 이쁜건 아니지만 비베라는 도시는 소도시다운 맛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 호수를 봐도 감흥이 없다. ㅎㅎ 


호수에는 어줍잖은 모던 아트 작품인 포크가 하나 꼽혀있다.


한참 여기저기 걷는데 백조가 몰려있다. 어김없이 그런 자리에는 아저씨가 과자를 뿌리고 있다. 먹을거 앞에서는 참새고 백조고 얄짤없다.



어김없이 들렀던 판가게.


로잔으로 돌아와서 유일한 볼거리라는 성당에 갔다. 가기전에 판가게를 두개정도 체크해두고 갔는데 하나는 성당 근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성당 가는 길에 딱 걸린다. 가서 좀 뒤져봤더니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즉 나에겐 별 도움이 안되는 판가게다. 여기까지 왔는데 합리적인 가격의 판을 살 수는 없다. 레어템이거나 엄청 싼 것이어야 이후 들고다니는 곳통을 감수하더라도 살 가치가 있다. 이 판가게 주인에게 근처 판가게 없냐고 물어봤는데 근처 판가게 뿐 아니라 제네바 판가게까지 알려준다. 독어쓰는 인간들은 이렇게 자상하지 않았는데 불어쪽은 꽤 자상하다. 이 친구는 현대카드 음반 라이브러리의 존재를 알고있었다. 그래서 물어본다 어떠냐고. 그래서 일단 컬렉션이 구리다고 해줬다.


AFC


아침에 내 건너편 침대에서 자던 아가씨는 보르도에서 왔다고 했다. 나에게 얼마나 있냐고 묻더니 가볼만한 행사를 알려주며 꼭 가보라고 재미있다고 했다. 아침부터 불어화자의 자상함을 느꼈던 일화였다. 호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진 않는다는 것을 아직은 몰랐지만 어쨌든 할일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하늘 좋네. ㅠㅠ 제일 부러운게 하늘이다.


두번째 판가게를 가봤더니 여긴 가격이 착하지 않다. 인테리어는 좋았지만. 여기 주인장은 나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일본이냐고, 아니다 한국에서 왔다 했더니 미안하댄다. 흔한 일이다. 미술관 하나 추천해주고 싶으니 꼭 가보라면서 아ㅎ 부흐트 Art Brut를 알려주었다. 거친 작품들이 있다고 했다. 나름 예술애호가가 추천해주는 것이니 속는셈치고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냥 나올수는 없어서 염가 CD 한두장을 샀다.


두번째 판가게.


아트 브루트를 찾아가는 길에 또 판가게가 보인다. 알고 간 것이지만 여행지에서 노력도 안하고 눈에 딱 들어오는 일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근데 좀 구려서 쫌만 보고 나오려던 차에 아저씨가 하는 말. "우리 5주년 행사하고 있어. 30프랑 이하는 이번주까지 모두 10프랑이야." 음 그래서 좀 더 찾아보았다. 30프랑 이하 두장과 이상 두장을 골라서 얼마냐고 물어봤다. 두장은 룰대로 10프랑에, 다른 둘은 25% 깎아주겠다고 한다. 내가 주저하자 네장에 60프랑을 제시한다. 하나 빼면 얼마냐고 물었더니 그럼 55프랑이랜다 ㅋㅋ 이걸 다 사야 60프랑이라고. 아저씨 뭔가 나에게 악성재고 몇장을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다. 그러면서 내가 고른 한장이 꽤 비싸고 희귀한 것이며 오리지날이라고 말해준다. 나도 알고 집은거고 판장사들도 업잔데 당연히 나만큼 판가격은 알고있다. 루체른에서 레어템을 팔려고 했던 아저씨도 그 음반의 레이블과 년도를 말하면서 이거 욜라 컬렉터즈 아이템인데 잘도 집는다고 했었다. 여튼 이 아저씨는 계속 정말 싼거라고 마구 이빨을 터는데 영어인지 불어인지 헷갈리는 말을 계속 해서 정신을 잃고 그냥 샀다.


세번째 판가게. 허술했다.


하지만 악마의 유혹이...


아트 브루트에 갔고 두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하나는 한국인 네댓명이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있었는데 그중 한명이 눈에 익었다. 일행중 한명이 떨어져있길래 그 아저씨에게 나중에 물어봤더니 자기네는 평창 올림픽 관계자들이라고 했다. 로잔에 올림픽 관련 기관이 있으니까 아 그렇구나 싶다. 혹시 저 사람은 송승환씨인가요 했더니 맞다고, 개폐막식 총감독이라고 했다. 언론에서 몇번 본 사람이라 그런가 나처럼 눈썰미 없는 사람도 금방 맞춘다. 그 일행중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이건 제정신 가진 사람들은 못그려. 어딘가 문제가 있어야 이만큼 그리지."


http://lepoignardsubtil.hautetfort.com/danse_macabre/


http://www.artbrut-sammlung.de/jean-pierre-nadau.html


내부 촬영 금지라서 검색한 이미지 두개를 위에 걸어본다. 정확하게 저 그림들은 아니었지만 저런 그림들이 미술관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왔더니 인포 아줌마가 묻는다.

: 좋았어요? 어땠어요?

:: 어지럽네요. 매혹적이었구요.

: 그렇죠? 이 사람들의 증상은 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들 자기들만의 사정들이 있었고 다 달라요. 그들에겐 모두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었던거지요. 저는 이 작품들이 살아남기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 맞아요. 이런 그림들은 편집적으로 살기 위해 계속 그리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그리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계속 그린거 같아요.

: 이사람들은 쉬지도 않고 여백도 가만두질 않지요. 계속 그리고 모든 것을 채워야 하는 사람들인거에요. 그러니까 가족들은 이걸 계속 보게 되고 그들은 이걸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죠.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설명하고 가져온 것들이구요.

:: 아마 가족들은 그들과 함께 사는 것 조차 버거웠을 것이고 그들만큼 신경질적으로 되었을거에요. 그들과 24시간을 보내면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그림들을 버린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 그럼요, 엄청 신경질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요. 온 가족에게 정신병이 생길 지경인거지요.

:: 밤에 혼자서 저 그림들을 보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 처음에 일할때는 가서 불끄고 문잠그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얼른 뛰어나왔어요.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봉주르 인사를 한답니다. 저 안에는 그분들의 기운이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까 무섭지요. 생각해보세요. 겨울에 해는 일찍 져서 어둡고 밖에 눈은 쌓였는데 관객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잠그고 나가려면 제가 얼마나 무섭겠어요. 이젠 좀 안무섭지만요.

:: 아아 정말 그렇겠어요. 그래도 이젠 안무서워서 다행입니다.


그 미술관은 우울하거나 정신질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미술적 재능이 폭발한 사람들의 작품을 모아둔 곳이다. art brut은 outsider art라고 한다. 고흐나 실레가 그랬듯 어딘가 아프고 뒤틀린 사람들 중에서 예술적 재능이 폭발한 경우들은 꽤 있다. 이 미술관의 작품들은 그런 이들의 것이다. 보고있으면 나도 패닉에 빠져버릴것만 같은 그런 강렬함이 있다. 



최근에 그런 만화를 봤었다. 프랑스 작가 다비드 베의 발작이라는 작품인데 가족력에 간질이 있고 동생의 증상이 심하며 자신도 일부 증상이 있는 작가의 자전적인 만화다. 이 만화를 보면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작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린 만화라는게 절절하게 느껴지며, 나도 발작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나마 다비드 베는 상당히 순화된 것이고 여기 있는 것도 나름 순화되었거나 비교적 완성도있게 표출된 것들 위주로 있는거 같다. 그래도 다 보고 나갈때 쯤에는 걷기가 쉽지않을 정도의 시각적 충격이 있다. 나와서 걷는데 햇빛이 너무 밝아서 힘들었다. 로잔 와서 가장 잘한 것이 이 미술관 간 것이 아닐지. 


다비드 베의 발작 소개 http://blog.aladin.co.kr/781377146/6284229



돌아가는 길에 또 판가게를 쉽게 찾았는데 여기도 나름 아트였다. 중고서점 지하실을 음반점으로 쓰고 있었고 채광창이 있는 지하공간은 꽤 운치있게 조성되어 있었다. 다루고 있는 음반들도 상당히 넓은 장르를 커버하고 있는, 높은 수준의 판가게였지만 가격도 높았다. 그래도 희한한거 한두장 사들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서점 사진도 좀 찍고 나오려던 찰나, 주인 아주머니가 찌라시를 주면서 읽어보라고 한다. 자기네는 인디 서점으로 버텨보려고 노력중인 가게라며. 다들 자기 직업이 있고 그러면서도 서점을 유지하는 것이라 한다. 대기업들과 온라인때문에 작은 서점은 남아나는게 없다고 한다. 내가 말해줄 수 있었던건 서울의 서점과 음반점은 이미 대략 망했다는 것 정도.


서점 지하를 차지한 우아한 분위기의 음반점. 주인 취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까 보르도의 아가씨가 알려준 행사에 참여하려고 가는데 성당근처라고 들어서 좀 헤매다가 물어봤더니 청년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구글지도를 켜서 알아본다. 저쪽 어디인거 같다고 알려주길래 그리 가봤다. 가서 우체부가 보이길래 아 이남자면 모를수가 없어 하는 생각에 물어봤다. 이 흑인 한참 들여다보다가 솔직하게 말해서 모르겠다...고 ㅋㅋ 그러더니 또 구글지도를 본다. 여기 어디인거 같은데 불확실하댄다. 그러자 다른 아줌마들이 알겠다고 좌회전 후 직진 어쩌구 한다. 나도 메르씨, 흑형도 자기를 도와줘 고맙다며 아줌마들에게 메르씨. 그런데 거기 가도 없었다. 근처를 한 두바퀴 뺑뺑 돌다 포기했다.


보르도의 우유파는 처자. 고야.

http://m.blog.daum.net/haura/11605089


이제 남은 과제는 공연 뿐이다. 이동네 밴드인데 fly in the eye라는 수상한 이름을 가졌다. 나는 관대하니까 신경 안쓰고 공연시간에 맞춰 공연을 기다렸다. 원래 클럽 공연들 30분 지연은 보통이니까 제외하더라도 30분을 더 지연시켜 예정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한 것이다. 유료관객은 나 포함 6명이었고 내가 나갈때 처자 두명이 들어왔으니까 전체 관객 대략 10명 정도로 추정. 여튼 공연장에는 한동안 나만 앉아있는 상황이었다. 기다리면서 딥 빡침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차분히 기다려서 공연 시작시간이 되었다.


오오 내 평생 이렇게 후진 공연은 또 오래간만에 본다. 작곡 기타 보컬이 총체적 난국이었고 드럼도 링고 스타 정도의 실력으로 추정되는 남자였다. 네곡 듣다가 나왔다. 내일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할 것도 있고 뭐 여러가지 핑계야 있지만 음악이 좋았으면 죽치고 봤을 것이다. 열명 안되는 공연장에서 가방 둘러메고 나온건 처음이지만, 내 돈 날린 것도 있으니 쎔쎔으로 치자.


내 눈속의 파리같았던 친구들.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나길...


여튼 비도 오고 일정도 몇개 어그러졌고 꽤 힘든 날이었다. 그래도 세일하는 판가게도 발견하고 이쁜 서점을 두개나 보고 이쁜 판가게도 두개나 봤고 훌륭하고 안쓰러운 전시도 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좋은 하루다. 


I bought a record today. 

So it was a good day. 


이거보다 더 이쁘게 호수가 보이는 야경이었는데 찍사의 스킬 부족으로 이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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