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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Dec 08. 2020

음악 없는 말

2020-12-08

요는 음악의 세계가 - 그것의 언어와 아름다움과 신비가 -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시작되었다. 음악은 더 이상 저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세상'의 은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저 바깥'의 것이야말로 은유이고 음악이 진짜였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밤 기차 덕분이다. 일상생활을 채우는 소리가 스리슬쩍 내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p.66.


겨울날, 월요일의 월미도에는 예상대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놀이공원의 대관람차는 멈춰있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고 바닷바람은 추웠다. 그런데도 몹시 오랜만의 드라이브에 신이 날대로 나서, 조악하면서도 나름의 멋을 간직한 경양식집의 분위기가 귀여워서, 그런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준 루돌프가 사랑스러워서, 자꾸자꾸 웃음이 났다. 메뉴판에서 랍스터가 들어간 육만 얼마짜리 특별 정식을 가리켜봤지만, 역시 주문 불가. 미디엄으로 요청했지만 갈비나 다름없이 웰던으로 나온 스테이크와 돈가스를 씹으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무척 즐거웠다.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깔깔대며 웃었을지 모른다.


경양식집의 음악은 우리를 '싸이월드 시절'로 데려갔다. Rachael Yamagata - Be Be Your Love라든가, Eric Benet - The Last Time 같은 노래가 중간중간 귀에 걸렸다. 배경음악을 제외한 나머지는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실없는 농담과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하는 의미 없는 잡담으로 가득 채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DJ는 내가 맡았다. All 4 One, Boyz II Men, Toni Braxton, Brian McKnight, Alicia Keys, Adele, No Doubt, Green Day, Bon Jovi... 알고리즘의 인도에 기뻐하며 차가 막히는 길 위에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나오며 마주친,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과 씁쓸한 기억 같은 것들을 저 멀리로 날려주었다. 내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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