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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deer Jan 31. 2023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23-01-30

왕희손의 말대로라면, 글 쓰는 사람은 용기를 가져도 좋다. 못난 글은 못난 글대로 누군가의 타산지석이 될 수 있으므로. 이렇게 자신을 이해해 줄 독자를 상상하고 글을 쓰는 한, 시간을 뛰어넘어 필자와 독자 사이에 '상상의 공동체'가 생겨난다.
이처럼 사람들이 글을 써 남기는 것은 하루살이에 불과한 삶을 견디기 위해 영원을 희구하는 일이다. 훗날 누군가 자기 글을 읽어주기를 내심 바라는 일이다. 불멸을 원하지 않아도, 상상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지 않아도, 글을 쓸 이유는 있다. 작가 이윤주는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서 글을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엄습하는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쓸 필요가 있다고. 쓰기 시작하면 불안으로 달구어졌던 편도체는 식고,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진정될 수 있다고. p.28-29.


내일이면 벌써 2023년 하고도 1월의 마지막 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생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다니. 이럴 때 두려운 것은, 화산의 폭발이나 혜성의 충돌이나 뇌우의 기습이나 돌연한 정전이 아니다. 실로 두려운 것은, 그냥 하루가 가는 것이다. p.19' 프란츠에서 보내준 카톡에는 내일이 슈베르트가 태어난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내일을 7분 남겨두고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 Fantasy in F Minor, D. 940 (Op. 103) For Piano Duet>을 듣고 있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와 리카르도 카스트로의 연주다. 작년에 잘한 일 중 하나 : 마리아 조앙 피레스 내한 공연을 보러 간 것. 의식의 흐름에 따라 여기다 자랑해 둔다.


아침을 따로 챙겨 먹긴 했지만, 그전에 충분히 자고 꽤 일찍 일어나서 따뜻한 물과 차를 마시며 책을 몇 페이지라도 읽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나만의 리추얼'이라고나 할까, 하하. 그런다고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것도, 불안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지마는 뿌듯한 기분은 남는다. 아침에 허둥대지 않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일도 아침 8시쯤 일어나 따뜻한 물 한잔에 유산균을 먹고 차 한잔 마시고 커피와 샐러드를 준비하고 씻고 지하철+걷기(또는 걷기만, 제발)로 출근하는 루틴을 지켜볼까 한다.


며칠 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Stutz>를 흥미롭게 봤다. 조나 힐이 만들고, 그의 정신적 지주인 테라피스트 스투츠 박사와 함께 출연도 했는데, 몇몇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삶은 pain, uncertainty, constant work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move forward!라고 적고 보니 마치 일찍이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깨나 한 할아버지 같은 말투가 되어버렸네? 크크.


그래서 내가 적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다큐에서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자꾸만 쓰라고, 무조건 쓰라고, 무엇이든 쓰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냉장고 파먹기로 저녁을 때우고 설거지를 한참 하고 세수도 아직 하지 않은 상태로 휴대폰만 쳐다보며 뒹굴다가 엄청난 귀찮음을 무릅쓰고 책상에 앉아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어제부터 관심 폭발 중인 chat GPT에 관한 기사를 잠시 읽다가 '동물짤 성격 테스트'(링크 : https://testharo.com/animal-memes/ko)를 해본 후 '난감한 원숭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을 남매 단톡방에 공유한 후에야 아침에 찍어둔 사진을 올리고 책을 다시 펼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테스트 결과인 '난감한 원숭이'는 생각이 너무 많은 편. 겉으로는 웃는데 속으로는 잘 안 웃음. 나 혼자 생각할 시간 꼭 필요. 계획적인 거 좋아함. 감수성 풍부함. 다 같이 노는 시간이 지루함. 생각 많고 망상 잦음. 딱히 틀린 얘기도 없다.


AI가 책을 써 주는 세상이 오면 나 같은 사람들은 뭘 해서 먹고살 것인가. 이렇게 일기조차 엉망으로 쓰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계속 써야겠지, 아니 쓰고 있겠지. 오랜만에 집 키보드를 쓰니까 뭔가 편안하네?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얼마 전에 '왜 키보드는 QWERTY로 시작할까'라는 기사를 봤는데 그게 또...


슈베르트의 곡을 두 번째 듣고 있고, 아름답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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