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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열 May 18. 2018

어설퍼서 미안해

아이의 고집을 꺾다


 오후 4시, 어린이집에 있을 딸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각, 어린이집 현관에 있는 유리문을 통해 멀리 아이가 보였다. 활짝 웃으며 아이를 향해 세차게 손을 흔들었다. 내 격한 환대가 무색하게도 28개월 꼬맹이는 멀리서 날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아빠 가, 아빠 가요!” 라고 말하는게 들린다. 엄마를 데려오란다. 하원할 때 종종 엄마를 찾긴 했지만 그저 투정 정도로 그칠 뿐이었다. 이번에는 좀 많이 서운한가보다.

 이상하다. 전날 밤 꼭 아빠와 같이 자야겠다며 내 손을 잡고 안방으로 끌고가던 아이였는데. “미안해 딸, 아빠가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좀만 이따가 와서 꼭꼭 같이 잘게.” 라고 타일러도 태연하게 침대보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아빠 여기 누우세요~” 라며 콧소리를 내던 아이였는데.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뒤로 하고 옆구리로 파고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한 미소로 잠들었는데 말이다.



 옆에 있던 어린이집 선생님은 “어떡해, 아빠 진짜 서운하시겠다.” 라며 걱정해준다. 종종 아이가 엄마 데려오라고 떼를 써도 “아빠도 엄마가 더 보고 싶어.” 라며 찡긋 웃으며 넘기고는 했다. 그치만 엉엉 울며 아빠에게 오지 않겠다는 아이를 보면서 오늘따라 섭섭한 마음을 감추는게 어렵다. 아이는 힘들게 힘들게 신발을 신었다. 감정이 쉽게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다. 2층에서 1층으로, 계단 한 칸을 내려가는데 평균 2분이 걸렸고 “엄마 보고싶어요.” 를 다섯 번 말하며 울먹였다. 회사에 있는 엄마가 비행기 타고 날아오기 전까진 꼼짝도 하지 않을 심산인가보다.

 “우리 딸, 엄마가 안와서 많이 서운했구나.” 잠시 울음이 잦아들고,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지금 회사에 있어. 그래서 아빠랑 집에 가야 엄마를 볼 수 있어.”

 "아빠는 가!" 재차 울음이 터진다.
 "그럼 아빠 그냥 갈까?” 라고 물으니 이번엔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럼 아빠가 안아줄까?”, “같이 제일 재밌는 블록쌓기 놀이할건데?”, “집에 가서 요구르트 먹자.”, "뻥튀기랑 치즈랑 바나나도 줄게!” 모두 다 싫단다. 엄마를 데려 오란다.
 이런 대화가 영원히 돌고 또 돌 것 같았다. 아이가 말하고 싶은 걸 최대한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는 대화를 선호하기에 억지로 안고 내려가고 싶진 않았다. "아빠 먼저 갈게.” 라고 먼저 가버리는 시늉을 하기엔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 앞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 항상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뽀로로 비타민은 왜 하필 오늘 딱 떨어진건지.

 어린이집에서 실랑이가 시작된지 35분이 지났다. 아직 계단 중간이다. 인내심이 바닥나려 한다.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를 납치하듯 집에 데리고 가려는 찰나, 얼마 전에 아이와 하원길에 베이커리에 들러 카스테라를 먹으며 무척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빵집 갈까?” 이 한마디에 아이 마음 속 빗장이 스르르 풀렸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근처 베이커리로 내달렸다. 아이 입 속에 카스테라 빵 한조각을 넣어주면 다 잘 풀릴거라는 희망을 품고.



 베이커리에서 생글생글 웃는 아이를 안고 함께 빵을 골랐다. 이번에도 카스테라였다. 난 떨어져나가기 직전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듯한 멘탈을 추스려야 했다. 달콤하디 달콤한 초코슈를 골랐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홧김비용을 쓰듯 당장 먹지도 않을 옥수수식빵 한 봉지를 쟁반 위에 올렸다. 아이는 “초록색 의자에 앉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아이는 초록색, 난 주황색 의자에 앉았다.


 그토록 염원하던 평화가 찾아왔다. 둘 다 지쳤는지 각자의 빵을 말 없이 음미했다. 아이는 어느덧 배가 부른지 “너무 맛이 없어!” 하며 먹던 카스테라를 뱉었다. 맛이 없을리가. 다시 카스테라를 한 입 주니 잘 먹다가 또 뱉어낸다. 이제 그만 먹으려나보다. 엄지손톱만큼 남은 카스테라 한 조각을 무심코 내 입 속에 털어넣었다. 재충전이 미처 끝나기 전, 그렇게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다시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재빨리 옥수수식빵 한 조각을 건넸다. 다른 빵을 달란다. “그럼 아빠가 이거 먹는다?” 하니 식빵을 먹겠다고 한다. 그래서 식빵을 다시 건네면 “아니 다른 빵 다른 빵 다른 빠아앙!” 이라고 외친다.



 이 뫼비우스의 띠를 자르는 방법은 물론 아주 잘 알고 있다. 카스테라를 하나 더 사주면 그걸로 끝이었을 것이다. 빵 하나 다시 사주는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마음은 아이의 떼를 더이상 받아줄 수 없다는 맞고집으로 표출되었다. 결국 떼를 쓰며 발버둥치는 아이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안고  “안되는 건 안되는거야.” 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며 집 앞까지 왔다. 울음을 그치기는 커녕 “다시 빵집으로 가!” 라며 통곡하는 아이를 보고있자니 굳게 다문 입술에 힘이 풀린다.

 엄마가 데리러 왔으면 좋겠다는 말만 반복하던 아이의 고집, 그리고 아빠로서 아이를 대하는 이런 내 태도가 대체 뭐가 다른걸까. 아빠는 28개월 아이의 고집을 끝끝내 꺾고야 말았다. 그치만 이게 진정 아이를 위한 행동이었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떼쓰는 대로 받아주면 안된다는 본래 내 훈육의 방침인건지, 아이가 날 힘들게 했으니 나도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겠다는 보상심리인지 말이다. 아이를 내려놓고 쪼그려앉아 여전히 훌쩍이는 딸의 얼굴을 바라봤다. 온통 눈물 콧물 범벅이다.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맨손으로 하얗고 노랗게 얼룩진 얼굴을 닦아줬다. 언젠가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빠가 어설퍼서 미안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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