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재밌게 보기 위한 포인트는?
유명한 '변기'가 왔다는 소식에 모처럼 국립현대미술관이 북적인다.
그런데 이 '변기', 즉 '샘'을 이리저리 훑어보는 건 아마 이 전시를 보는 가장 지루한 방법일 것이다.
사실 지금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변기 대부분은 뒤샹이 1940년대에 다시 구매해서 사인만 새로 한 작품들이며 1917년에 만든 변기는 작업실 이사 후 잃어버렸다. 그리고 뒤샹의 예술은 작품을 시각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아이디어의 가치를 보여준 '개념 미술'이기 때문에 작품의 모양을 보는 게 가장 의미가 없다.
그럼 뒤샹 전시에서 뭘 봐야할까?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봤다.
뒤샹도 10대 때는 한국의 ‘입시 미술’ 학원 격인 파리의 사설 미술학교에 다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많은 관객들이 이 때 즈음 뒤샹이 그린 회화 작품을 좋아한단다.
그럴 것이 뒤로 갈수록 오브젝트만 가득하고 사실 전시에서 눈으로 즐길만한 작품은 초기 회화밖에 없다.
몇몇 사람들은 '뒤샹이 그림도 잘 그렸더라'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실 회화적으로 기교가 뛰어난 작품들은 아니다. 오히려 세잔이나 피카소를 따라 그린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이들 그림을 통해서 대가의 작품을 흉내내며 '거장'을 꿈꾼 뒤샹의 청년 시절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오른쪽 세잔의 그림은 소파의 형태와 뒤쪽 깊이 있는 공간, 아버지의 다리의 형태 그리고 신문까지 교묘하게 형태가 서로 호응을 이루며 정리가 되어 있다. 반면 뒤샹은 비교적 단순한 구도. 초록색을 넣어서 약간의 과감한 시도를 해보려고 했지만 다른 여러 색에 묻혀 다소 특색 없는 그림이다.
이밖에 여러 작품들에서 인상파와 입체파를 따라가려는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러나 뒤샹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인정받는데 실패한다.
뒤샹은 파리 화단을 중심으로 부상하던 ‘입체파’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그린다. 이 작품을 <앙데팡당>전에 냈지만 거절을 당하고 만다.
충격을 받은 뒤샹은 그 길로 그림을 택시에 실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더 이상 입체파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뒤샹은 기존 그림의 규칙을 깬 입체파의 논리를 더 밀고 나가 아예 회화 자체를 거부한다. 그 결과 <병걸이>(1914)를 가져다 사인을 하고 작업실에 놓았다. 기존에 있던 공산품을 그대로 예술 작품화한 ‘레디메이드’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사인한 변기, <샘>(1917)이다.
이렇게 보면 <샘>은 좌절과 실패의 오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이 변기마저도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뒤샹은 1923년 예술을 그만두고 체스 선수가 된다.
그런 그를 뒤늦게 조명한 건 미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술의 중심지가 미국으로 옮겨가고, 회화에 염증을 느낀 작가들이 ‘레디메이드’를 활용했다. 입체파가 그림 속의 시점을 다양화했다면,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술의 장르를 회화 밖으로 확장하는 물꼬를 뒤샹이 터준 셈이다.
짧은 예술 활동 기간만큼 작품이 많지 않다.
뒤샹도 이 사실을 잘 알았는데, 그래서 만든 것이 전시장 뒷부분에 가면 볼 수 있는 '미니어처' 박스들이다.
또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한 곳에 모여 있어야 효과적이라는 걸 잘 알았다.
가뜩이나 작품도 별로 없는데 여러 소장자에게 흩어지면 한 번에 모이기가 힘들다. 한 작품씩만 전시되면 눈길을 끌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렌스버그 부부에게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수집하도록 권유했고, 이 작품들은 두 부부가 고스란히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기증했다. 덕분에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뒤샹의 팬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전시장에 가면 뒤샹이 남긴 많은 난해한 말들이 적혀있다. 그러나 전시에서 느끼는 가장 중요한 건 과감성과 반골 기질, 그리고 프로 예술가의 전략적 태도다.
텍스트를 꼼꼼히 보며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 일단 눈으로 작품을 보자. 거절당한 청년의 오기와 도전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전시가 될 것이다.
<마르셀 뒤샹: The Essential Duchamp> 2018. 12. 22~2019. 4. 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 2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