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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Sep 27. 2019

휴가 후유증

고향이 주는 낯섦

나에게 한국으로의 휴가는 결론적으로 피로가 더 누적되어 돌아오게 되는 휴지기다.

친정과 시댁 친지 방문 및 집안 행사 참석.

친구들 그리고 옛 직장상사와의 회포.

어디 그뿐인가?

미용실과 피부과 등 독일에서 소홀했던 다양한 예뻐지기 프로그램까지 욕심을 내다보면 하루하루 일정이 매우 숨 가삐 진행된다.


무엇보다 도로 사정을 사전 예측하기가 제일 힘들었다. 친정집이 최근 오산으로 이사를 했는데 학창 시절 친구들을 비롯 대다수 지인들은 여전히 서울지킴이들이다. 해마다 빠른 성장 속에 걸맞추어 낯설게 변화하는 모습임에도 내게는 성장 시절 삶의 터전이던 서울, 강남이 가장 낯익다. 더 이상 집도 없는 그곳이 여전히 내 마음의 고향이며 영원히 그리 남을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때문에라도 서울 나들이가 지겹지 않다. 몸은 곤해도 작은 힐링이 된다고나 할까?


오산과 서울의 편도 거리는 50km 이상이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체증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중앙맥인 경부 고속도로를 피할 수 없다. 조바심 심한 우리 부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간 그 길을 편도 2시간씩 계산하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마음의 거리는 그립던 누군가를 만나는 기쁨으로 실거리의 단 몇 분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는 통행료 지출도 쏠쏠찮고, 누적 주행거리 또한 만만치 않다.


유럽 최악의 교통 지옥 파리와 이태리 그 어느 대도시에서도 순식간 현지화되는 남편이 유일하게 어리바리 해지는 곳이 바로 서울과 그 인근이다. 유럽은 어딜 가던 그들만의 룰이 읽히는데 이 곳은 그 룰조차 없는 듯 매 순간이 도전이란다. 덩달아 나도 신경이 매시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도로상에서 투자한 시간 속 소모된 체력과 함께 서서히 피로가 층층이 쌓였을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시달린 대표적인 공해요소는 소음이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여성분들의 구두 뒷굽 끄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면 내가 다소 유난을 떠는 게 맞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말소리는 유럽인들의 언어보다 내 귀에는 한 옥타브 높게 들린다. 많은 독일인들은 특히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 눈치도 딱히 안 보는 듯도 하고, 또한 반가움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다 보니 억양 또한 높아지는 게 아닐까 나름 분석해본다. 양 언어의 데치벨을 비교해본 것이 아니기에 어느 것이 더 시끄러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식구만 해도 모이기만 하면 떠들썩하다. 친정 쪽 경상도 사투리와 시댁 쪽 전라도 사투리 억양까지 가해지면 누군가 싸우는 양으로 다투어 말을 뱉곤 한다.


그 또한 아니어도 한국은 어디던 소음이 도사리고 있다. 도로의 수많은 차량은 물론이며, 대다수 카페, 식당 등의 장소에는 음악이 깔리고, 일부 공간에서는 뒷 배경이 되어줘야 할 그 요소들이 우리의 대화를 삼키어버릴 기세로 주인행세를 하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볼륨 소리가 절로 커지는 효과를 유발하는 듯했다. 어떤 식당에서는 주문을 외쳐대는 종업원들, 높은 볼륨의 걸맞지 않은 음악소리, 손님들의 말소리 그리고 후루룩 쩝쩝 맛나게 식사하는 음성어까지 뒤죽박죽 되어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온갖 소리의 향연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그곳이 매우 곤역일 수도 있음이다.


물가는 또 어떠한가? 천정부지로 뛰어 내가 스위스에 와 있는가 의아할 정도다. 그럼에도 돈 지출이 구멍 난 독에서 물 새듯 하니 휴가 와서 돈 걱정만 할 수도 없고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위도 작은 내게는 매 끼니 먹방 투어가 단 며칠 만에 고문 아닌 고문이 되어버린다. 최선으로 안팎에서 대접해주는 이들의 성의에 나 또한 최선으로 응하고자 노력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매일 소화기관은 비상벨을 울리고, 그 속사정을 본인 외에 누가 또 알 수 있을까. 그리 주제넘게 먹방을 하고 왔지만 매 끼니 누군가를 대접하거나, 누군가의 대접을 받다 보니 정작 내가 휴가 전부터 먹고자 했던 떡볶이, 순대 등 길거리 음식은 체험못하고 와 아쉬움이 크다.


심신의 피로로 어느 순간 내 집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그 곳. 그럼에도 불구, 떠나오면 그리운 혼란 자체인 그곳. 독일 향 비행기가 이륙함과 동시에 토내이도의 눈에서 벗어난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당분간은 다시 밟고 싶지 않기까지 하다.

이 기분의 유통기한은 하지만 단 하루.

짐 풀고 쓰러져 잠들었다 새 아침을 맞는 순간 나는 다시 그리움을 앓는다.


떠나온 그 땅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맞았던 추석,
도심지 비에 젖은 무궁화,
내가 좋아하는 한국 솔나무,
양 구름 떼 앙증맞던 울릉도의 하늘,
먹고 마시며 웃고, 시를 음미하던

모든 순간 그리고 함께 했던 모든 이들.

그들을 다시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날들이 또다시 카운트된다. 그들이 몹시 그리울 테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그 땅이, 그 혼란스럽고, 혼동의 도가니 같은 그 곳이 어느새 내게는 친밀한 듯 극히 낯설어졌음을 솔직히 고백해본다.

한국은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닌가보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내 뿌리이자 애증 서린 고향인 탓에 그리움이 쌓여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 고향에서 느낀 그 낯섦조차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나는 지독한 후유증을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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