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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Yo Jan 05. 2018

동물원, 그리고 두 얼굴에 감춰진 참혹한 진실.

#동물원#인간#동물#거짓#진실#역사

동물원은 인간과 동물에게 있어 상당히 상호관계적인 시설이라 할 수 있겠다. 동물은 야생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안정된 공간 안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며 편히 생활할 수 있고, 인간은 그런 동물들의 안락한 일상을 바라보며 소소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존재는 유리벽 너머에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교감이란 감정까지 공유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동물원을 창시한 ‘칼 하겐베크’는 혁신적인 인물이라 표현할 법 하다. 그는 어부였을 당시 우연히 그물에 걸린 바다사자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현대 동물원을 창설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갔다. 당시 동물은 반드시 쇠창살로 이루어진 우리 안에 전시되어야 한다는 시대의 인식을 과감히 깨버렸고, 그로 인해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지내야했던 동물들은 답답한 우리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공간에서 별 다른 제약 없이 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환한 얼굴로 사자와 포옹하며 교감하는 사진은 하겐베크가 자신의 동물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창설한 동물원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아 부었는지를 엿볼 수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쭉 설명했던 하겐베크의 일화들이 사실은 아주 모순되고도 왜곡된 진실이라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사실 하겐베크가 이루었던 위대한 업적 뒤에는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참혹한 진실들이 가득 감춰져있다. 그는 현대판 지킬&하이드다. 쉽게 말해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웃는 얼굴을 앞세워 평생을 오로지 동물만 생각하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움직였으나 바로 뒤에선 칼을 든 악마의 모습으로 수많은 동물들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을 품고 그간 입에 담지도 못 할 끔찍한 만행들을 저질러왔다. 새끼 호랑이 네 마리를 잡기위해 수 십 마리의 어미 호랑이를 가차 없이 총으로 사살했고, 희귀한 새끼 바다사자 한 마리를 잡기위해 그를 보호하며 둘러싼 무리를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며 생명에 대한 존엄성 없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훗날에 알려진 이야기론 그는 수많은 경쟁사들로 동물의 몸값이 오른 탓에 동물 수입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지금으로썬 절대 상상 할 수 없는 ‘사람을 전시 한다’는 충격적인 카드까지 꺼내들며 세계적으로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전 세계에 고루 분포하고 있는 희귀한 원주민들을 자신의 우리 안에 끌어 놓고선 그들의 삶을 단단히 속박한 채, 순수한 그들을 인간의 놀잇감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하겐베크의 우리 안에 끌려온 원주민들은 거센 채찍질에 견디지 못 해 어쩔 수 없이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끝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불편한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동물원은 동물과 인간의 화합을 아우르는 장소일 수도 있겠으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물의 ‘편의’보다는 인간의 ‘즐거움’을 우선시해서 탄생한 상당히 일방적인 시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비 없는 야생의 터전에서 벗어난 동물은 안전이 보장되는 시설에서 더 오래 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순 있겠지만, 과연 자유를 가장한 제한적인 공간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우리는 오늘날의 즐거움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랐는지를 똑똑히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그 참혹함의 중심 속엔 언제나 ‘인간’이 존재해왔다는 사실 또한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동물원의 창시자, 칼 하겐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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