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란 Mar 21. 2023

음식과 육신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곧 나를 이룬다. 




인간은 놀랍도록 복합적인 유기체다. 신체 건강과 웰빙에 대한 연구 역사가 유구하고 웬만한 질환은 치료 내지는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아직 인간의 몸에는 미지의 영역들이 많다.


14년도 즈음 지인과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왜 그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맥락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가 말한 한 가지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서른이 넘으면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동 청소년기에 걸쳐 신체가 발달하고 뇌는 초기 성인기 20대 초반까지 계속 성장한다. 따라서 20대를 필요한 발달을 마친 후 잠시간의 유지기로 친다면 그 이후로는 쭉 쇠퇴한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자연히 정신의 총명함은 흐려지고 신체는 쇠약해지는데, 소위 100세 시대가 되어 더이상 나의 몸이 희망처럼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게 될 때 어떤 심정일지 나는 두려웠다.


향후 우리 세대는 현재의 노인과 다르겠지만, 전통시장 근처를 지날 때면 허리 굽은 할머니들을 보며 나는 감히 나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한의원에 가면 뜸 뜨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원인 모를 슬픔을 느꼈다. 함부로 그들의 하루하루가 어떨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참 건방진 일이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몸 곳곳의 통증과 함께 시작하는 아침이 올까 두려워졌다.


전문가들이 건강 비결에 대해 말할 때 첫 번째는 유전이고, 그다음이 생활습관이다. 타고난 유전의 변량은 개인이 바꾸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현재 30대 초반인 나는 내가 가진 가족력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생활습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은 곧 나를 이룬다.


나는 술과 단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달콤한 디저트류는 그 폐해를 잘 알지만 결코 끊지 못한다. 거의 아침에 눈 뜨자마자 초콜릿이 코팅된 과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복용'하지 않고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이니 말 다 했다.


먹는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말하려면 많은 연구 결과와 통계 자료를 들어 여러 편의 글로 이어나가도 모자르다. 불규칙한 식사는 곧 불균형한 몸매이고, 신체의 수행능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기분과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기름진 식사는 염증 반응을 일으켜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당 제한을 하지 않으면 비만해지고, 비만은 우울을 비롯한 기분문제와 관련이 깊다. 식이섬유가 적은 고기 위주의 식사는 소화 기능을 떨어뜨리고 간에 무리를 준다. 대장은 기분과 직결되는 기관이며, 간질환은 현대인의 주적이다. 


건강 문제가 심각하거나 급격히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사진처럼 인위적인 식단은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의 방법은 이렇다. 술을 좋아하고 각종 디저트 신제품에 가슴이 설레는 나는 평소 운동을 챙겨하긴 하지만 식단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을 잃고 만다. 엄격한 기준을 드리운다면, 나는 식단조절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무엇이든 먹는다. 회식이 생기면 중국음식도 잘 먹고, 파스타 정도는 오히려 건강식에 가깝다고 곧잘 자기최면 하기도 한다. 약과와 초콜릿 과자류를 특히 좋아해서 일과 중에 한두 번 간식도 먹는다. 


그렇게 자유롭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필요성을 느끼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내 나름대로 '클린 주간'을 시작한다. 평소 먹는 습관을 되도록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유일하게 지키는 것이 있다면, 이론상 몸에 백해무익한 몇 가지 메뉴를 피하는 것이다. 나에게 이것들은 떡볶이, 피자, 짜장면이다. 초대 받은 자리에 이런 메뉴가 차려져 있다면 조금 맛은 보지만, 내 스스로 주문하는 메뉴에 이 선택지는 없다. 


어떤 전문가들은 "OO는 절대 먹어선 안돼"라고 여기는 강박 사고가 도리어 폭식으로 이어질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한다. 나 또한 이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나의 경우는 식탐이 있는 편이고 음식의 종류 제한보다 양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차라리 웬만하면 피해야 할 메뉴를 정해 놓는 방법이 더 잘 맞았다.


클린 주간에는 하루 한 끼만 셀러드로 대체하거나, 거의 모든 끼니마다 서브 메뉴로 '이거 너구리 밥인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포션의 셀러드를 볶음밥 1/2인분, 샌드위치나, 때로는 햄버거와도 함께 먹는다. 식사에 식이섬유를 곁들이는 것 만으로도 '혈당 스파이크'를 막을 수 있다. 하물며 케일이나 상추 서너 장만 먹어도 혈당의 상승 속도와 폭을 줄일 수 있으니. 똑같은 제육볶음을 먹더라도 깻잎, 상추 또는 양배추 쌈을 싸 먹는다면? 맛도 좋으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데,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한다면 탁월하게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식이섬유 덕분에 화장실도 잘 가게 되고, 대장 건강이 피부와 기분에 드러난다.


사실 나의 클린 주간은 마감 일을 두지 않는다. 딱히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고, 하루 한 끼를 셀러드로 대체해도 일이나 운동을 할 때 스테미너가 떨어지는 느낌이 없다면 최장 두 달 정도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순댓국이라도 한 끼 든든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 때 멈추고 대체로 일반식을 하는 식단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과식을 한 다음날에는 한두 끼 정도 셀러드나 죽으로 식사하고 속을 조금 편안히 만들어주는 식이다. 


절식 2주, 100일 다이어트 식으로 기간을 정하는 식단을 감행해본 적은 없다.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하물며 유투브도 9할을 먹방 위주로 구독하는 나에게 그런 방식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될지 시도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대체로 건강한 섭식습관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극단을 오가지 않는 것인데, 초 절식과 폭식은 절대로 파괴적이다. 소화기관과 정신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다소 지겨운 표현이긴 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음식과 건강한 관계(positive relationship with food)'를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건강한 관계인가? 나는 이 모든 것이 통제력의 유무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알건대 나는 먹음직스러운 토핑이 가득 올라간 피자를 한 판 시켜서 딱 한 조각만 먹을 수는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피자를 '피할 메뉴'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건강한 일반식 메뉴에 셀러드를 곁들이는 것은 내가 별달리 스트레스 받지 않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도 흰 밥 대신 현미밥을 택하는 정도의 통제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맹 물은 죽어도 못 먹겠다면 무리할 필요는 없다. 가당음료 대신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보리 음료나 차로 대체할 수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타일은 무궁무진하다. 


건강한 식사는 상상 이상으로 이롭다. 하루 이틀로는 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지만, 크리티컬한 건강 문제가 없는 사람이 건강식을 일주일 이상 지속한다면 효과를 볼 것이다. 


하루를 시작할 때 속이 편하고 몸이 가볍다. 집중력이 좋아지고 일의 생산성이 높아진다. 피부가 맑아지고 화장실에서 불필요하게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은 곧 나를 이룬다. 나의 몸은 그 누구의 허락도 구할 필요 없이 여러 건강 비기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실험실이다. 먹는 습관이 운동 습관보다 쉽고 우선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