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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un 18. 2021

우울한 사람을 구원하리라는 환상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우울한 사람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힘이 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언제까지 우울할래? 너 때문에 나까지 우울하다.”     


우울한 사람의 곁에 살면서 함께 감정의 격동을 타고, 

최선을 다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감정적으로 구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울한 사람을 가까이 곁에 둔 분들께, 감히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의 노력이 타인의 상태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그 사랑의 환상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이것은 서글프고, 말 그 자체로는 비정하지만 우울한 사람과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곁에서 버텨주기 위해 반드시 중요합니다. 애정을 표현하고 챙김을 베풀되 자신의 일이나 과업까지 크게 헌신해서는 그 노력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Only human" 

이 영어 표현은 인간의 한계점을 대변해줍니다. 

우울한 자녀가 날마다 베개를 적시며 잠들지 못할 때, 부모는 무조건적이고 자애로운 신적 존재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돕고 싶은 나도, 다만 한 개인이며 타인에게 쏟을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의 총량이 한정된 인간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울한 애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무리해서 연차를 쓰고 달려가는 것은 한두 번 이상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해치면서 쏟은 노력으로도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무력감, 나아가서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라는 억하심정이 들면서 갑갑함을 토로하고 싶다면

그를 위해 노력하느라 실은 나도 많이 힘들었고, 그동안 무리했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가까운 사람이 기분부전을 넘어 진단될 만큼 깊은 수준의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면, 이것은 이미 비전문가 타인의 도움 여하, 종류를 벗어난 경우이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우선으로 추천합니다. 이처럼 심각한 경우에는 우선 기간 한정적인 약물치료로 어느 정도 기분을 향상해야, 그 이후 심리상담을 받거나 기타 일상회복, 일반적인 말로 ‘정신적인 요양(기분이 나아지는 활동, 여가)’을 통해 그 이상 더 좋은 기분을 끌어올리는 단계적인 호전이 가능합니다. 극심히 우울한 경우에는 심리상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응어리진 것들을 터놓고 상담자와 이인삼각을 맞춰 고충 해소를 위한 치료의 과정을 함께해야 하는데, 극심히 우울하게 되면 그럴 심적인 여력조차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관점마다 추천 방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 비전문가인 주변인의 도움이 실제로 도움이 될 여지가 있는 '기분부전' 수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진심을 다해서 지지하되 무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우울한 사람이 아주 최소한의 일과를 유지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우울한 친구가 밤새 불면에 시달리고, 간신히 잠들어 반복적으로 출근시간 외줄타기를 할 때, ‘내가 할만한 영역’ 안에서 그의 일과, 즉 하던 직장 일을 계속 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집이 가깝고 직장이 같은 방향이라면 출근길 동행자가 되어주는 것이 방안일 수 있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모닝콜도 가능합니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면, 걱정되는 마음에 자신의 지각을 무릅쓰면서까지 친구에게 찾아가거나 더 지체하지 마세요. 당신은 무사히 출근을 하고, 이후 다른 일들로 정신을 환기하면서 당신의 일과를 소화해야 친구가 필요로 할 때 상황이 허락한다면 다시금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의 일과 유지를 중요하게 꼽은 이유는, 우울로 인해 일과를 완전히 놓게 되면 돌아갈 곳이 마뜩잖다는 사유, 다시 말해 ‘이미 너무 망가져버렸다’는 생각이 우울한 사람의 좌절감을 가중하기 때문입니다. 

기분부전 정도의 우울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긴 감기를 앓다가 마침내는 회복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그 즈음이 되어서, 심했던 지난 시간의 우울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거나(그래서 새로 취업을 준비해야 하거나), 신체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 건강에 큰 변화가 있었다면 수습해야 할 일들이 이렇게나 많고 어렵다는 생각이 더 빠를 수 있는 호전을 가로막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 좋지 않은 기분으로도, 이따금 이유 없이 눈물이 나거나 전처럼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또는 과도하게 잠이 쏟아지고 수면시간이 늘어나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우울의 때가 지나고 기분이 어느 정도 나아질 때 발판삼아 복귀할 최소한의 일과 유지가 필요합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할 수 있는 것들만,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


    비전문가의 손을 떠난 일이라면 전문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쉽고, 또 어렵습니다. 세 문장의 심플한 말이 나를 책임감이 부족하고 도우려는 진정한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서 어렵지요. 하지만 다만 인간일 뿐인 우리가 어떤 놀라운 마법으로 우울한 사람을 한 순간 우울하지 않은 사람으로 탈바꿈 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잔뜩 힘줬던 긴장감을 뺄 때 그의 우울한 시간동안 관계를 끊지 않고 더 오래도록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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