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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l 18. 2020

스스로가 가진 힘을 모르는 튼튼이

나는 내가 가진 힘을 알고 있는 걸까?

  산책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튼튼이는 꼭 옆집 카페에 들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은 모르니 카페 문 앞에 멈춰서 꼬리를 흔들며 사장님이 나오길 기다린다. 카페 사장님이 자기를 예뻐해 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나오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며 앞발을 들어 턱 안긴다. 턱 보다는 터억 터억에 가까운 제스처다. 사장님의 체구는 가녀린 편이라 튼튼이의 두 앞발은 사장님의 어깨까지 닿는다. 너무 좋은 나머지 온 힘을 싣는 튼튼이의 허그는 늘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표정은 아기인데 힘은 장사 같은 반전 매력. 30kg의 대형견인 튼튼이는 정말로 힘이 장사다. 가끔 산책을 하다가 어느 한 곳의 냄새에 꽂혀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면 내가 이길 도리가 없다. 그곳을 떠날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주는 수밖에. 하지만 정말 반전은 튼튼이는 자기가 얼마나 힘이 세고 몸이 큰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튼튼이와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다. 뒷마당에 튼튼이만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언젠가 우리만의 목조주택을 짓겠다는 꿈을 담아 튼튼이에게 커다란 목조주택을 만들어주었다. 울타리도 우리가 직접 짜주었는데, 튼튼이가 앞발로 짚고 일어설 수 있는 높이다. 튼튼이는 우리가 특별히 반갑거나(간식이 반갑거나),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울타리를 짚고 번쩍 일어선다. 우리에게는 튼튼이가 바깥 구경은 할 수 있되 넘어가지는 못할 정도의 울타리가 필요했다. 제주도에는 아직도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많지만, 우리는 튼튼이가 혹여나 사고가 나거나 최악의 경우 잡혀갈까 봐 걱정이 됐다. 그리고 대형견이기 때문에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구 상의 어떤 동물도 태초부터 갇혀 사는 운명의 동물은 없었겠지만, 사람들의 규칙이 너무 많아진 이곳에서 사람의 규칙을 모르는 튼튼이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만든 정성을 생각에서 안 넘어가주는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울타리를 만들 때 우리의 고민은, 어느 정도 높이가 되어야 튼튼이가 넘어가지 않을 것이냐였다. 철창처럼 빽빽하고 높은 울타리 안에 살게 하고 싶진 않은데, 너무 낮으면 울타리로써의 역할을 못하니 적정선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건 튼튼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튼튼이의 피지컬이라면 자기 키만 한 담장은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결국 울타리의 적정 높이는, ‘이건 뛰어넘으면 안 되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다행히 튼튼이는 겁이 많고 집을 좋아했다. 그래서 함부로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튼튼이는 알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있다는 것을. 있는 힘껏 달려 나가면 내가 잡은 리드  정도는 가볍게 끊고 가고 싶은 곳으로 멀리 가버릴  있다는 것을. 반가워서 내민  앞발의 힘에 웬만한 사람은 뒤로 밀린다는 것을 말이다. 가끔 맹렬하게 짖는 소형견을 무서워하는 튼튼이를 보며 생각했다. 튼튼이는 자신의 체격과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같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보다는 겁이 많은 편이 안전하긴 하지만,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고양이인  아는 호랑이들 말이다.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늘 내가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하셨다. 내 힘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면 결혼도 하지 말라 하셨다. 아니면 중국 남자랑 결혼하라 하셨다. 얘야, 중국 남자랑 결혼하면 여자를 떠받들고 산다더라. 딸의 능력이 아까웠던 아빠는 중국은 그렇다더라는 얘기를 믿었나보다. 아직까지 한국에선 결혼한 개인의 꿈보다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 아빠였다. 아빠가 보기에 딸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20대일 때 아빠는 술 기운에 종종 말씀하셨다. 아빠가 유학도 보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너는 마음만 먹으면 울타리를 뛰어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무대로 꿈을 펼칠 수 있단다. 내가 튼튼이를 보며 생각했던 것처럼.


  고양이를 쫓는 본능을 가진 튼튼이는, 어느  산책하다가 고양이를 잡으려고 자기 보다 높은 담장을 기어올라갔다. 역시, 튼튼이는 능력자였다. 순간 깨달았다.  욕구에 충실할  내가 가진 가능성을 펼칠  있겠구나. 나도 호랑이일까? 나는 충분히 뛰어넘을  있는 울타리 앞에서 스스로에게  못할 거라는 말을 하며 살았던  아닐까.


원하면 돌담은 언제든 넘어갈 수 있는 튼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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