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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05. 2018

과로사하지 않고  백수생활 잘 보내기

백수는 퇴근이라는 게 없거든요.

백수가 된 지 2주가 지날 무렵이었다. 직접 만든 웰빙 반찬들로 차린 집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기분이 우울하고 피로감을 느꼈다. '아니,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고 있는데 왜 짜증이 나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거지?'싶어서 당황스러웠다. 원인이 뭘까 생각하다가 지난 2주의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침 9시면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공부를 하고 운동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먹을거리를 만들거나 집안 청소를 하고 영어회화 스터디에 갔다가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서 이제 좀 쉬어볼까 하고 침대에 누우면 밤 9시가 넘어있기 일쑤였다. 침대에 누워서도 공부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영상을 보다가 잠들곤 했다. 하지만 내 하루에 간섭하는 이 하나 없이, 누가 시켜서 하는 일 하나 없이,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만 꽉꽉 채워서 살고 있으니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직장 다닐 때 못지않게 스케쥴러는 가득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퇴근이 없는 것과 비슷했다. 아, 이래서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직장생활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휴식이나 재충전의 명목으로 배정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이 백수생활을 좀 더 활용하기 위해 점점 더 스케줄은 늘어가고 있었다. 운동도 공부도 더 많이 하려고 하고, 건강을 위해 요리도 더 많이 시도해보고, 여행을 가서도 지금 하고 있는 운동과 공부를 놓지 않으려는 계획을 짜고 말이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퇴근하면 무조건 쉬는 것이 목적이었다. 멍 때리고 있어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다음날 출근해서 일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충전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의 하루는 생산활동과 그 생산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산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로로 인해 재생산 시간이 짧을수록 피로가 쌓인다. 하지만 지금 나는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재충전이 필요하지 않은 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비록 하고 싶은 일들이긴 했어도 내 몸과 마음은 계속 에너지를 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쉴 자격을 얻기란 쉽지 않다. 죽을 만큼 바쁘게 일했는데 고생했으니 충분히 쉬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다. 일하는 사람들도 이러한데,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백수가 마음 편히 쉬기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처럼 쓸모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백수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계속 무언가로 채우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채우는 것만큼 비우는 것도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또한 내 인생의 긴 레이스에서 보면 지금의 이 시기 자체가 다음 스텝을 위한 재충전의 시기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에너지를 빵빵하게 채우기 위해서라도 이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잘 쉬어야겠다. 잘 쉬는 방법에 대한 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휴식에 관대 해지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만 배운 현대인들 모두 마찬가지다. 열심히 멋지게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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