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지만 긍정적인 프리랜서의 일주일
열흘 전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계간지 입찰을 준비하는데 연간기획과 계절별 세부컨텐츠(계간이니 4개)를 제안해달라는 거였다.
익히 아는 고객사의 사보라 들뜬 마음으로 내용을 듣고 있는데, 슬슬 돈 얘기가 나오면서 내 열정은 짜게 식어갔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금액이라 내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물었다.
"얼마요? OO만원이요?"
전화를 한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민망한 듯 껄껄껄.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를 "일단 알겠다"로 종료했다.
몇 안 되는 경험이지만 과거에 비슷한 형태로 진행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금액을 확인했고, 또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시세를 물어보기도 했다. 지난 경험에 비춰봤을 때도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고, 지인들은 하나같이 뜯어말렸다. "어휴! 사람을 완전 알로봤네. 그거 하지마!"
이튿날 아침, 경험과 시세에 근거하여 내가 받아야 할 금액을 전화로 솔직하게 전달했다. 물론 이것도 분명한 과정을 거쳐 충분히 깎은 금액임을 낱낱이 밝혔다. 그리고 이 금액을 주고 나한테 일을 맡기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고, 안 맡겨도 된다는 뜻을 전한 셈이었다.
그랬더니 잠시 소통의 오류가 있었다며 과업의 범위를 줄이기 시작했다. 계간지 전체 목차 4세트가 아니라 그냥 4개의 큰 기획만 달라는 거다. 이게 이렇게 실시간으로 줄어들 수 있는 일인가 싶었지만, 내가 잘못 이해한 것도 있으니 줄어든 과업 범위에 맞춰 줄인 금액을 다시 전달했다. 또 "일단 알겠다"로 대화는 종료됐다.
그날 오후 다시 전화가 왔다. 연간기획도, 세부기획 4개도 다 필요없고 아이디어만 전달하는 걸로 과업이 대폭 축소됐다. 단, 아이디어를 전개시킨 과정은 문서화해야 했고(이건 당연한 것) '기획이 나오기 직전'까지의 아이디어를 카피로 만들어줘야 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 제시한 금액에 10만원을 더 얹어준다는 것이 업체가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일반적으로 일에 맞춰 돈이 책정되는데, 나는 돈에 맞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화가 날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이렇게까지 내 아이디어가 필요할까 싶은 애매한 감사함도 생겨 결국 그 일을 한다고 했다.
늘 그렇듯 내 아이디어는 희한한 곳에서 출발했다.
'사람을 완전 알로봤네'... 알 알 알? 마침 회사 이름에 'R'이 들어가네, R을 활용한 기획과 키워드도 재밌겠다, 'R의 습격'은 어떨까? R이 들어가는 이슈로 풀어볼까? 등등을 떠올리며, 그들의 원한 대로 '기획 직전'까지만 작업해서 전달했다.
내 손을 떠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난 일이다.
처음 일을 제안받고 견적을 조정하고 과업을 실행하는 과정 내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그사이 안좋았던 감정은 모두 풀렸다. 방향을 바꾸면 직전의 모든 기억이 리셋되는 금붕어처럼, 부정적인 마음을 산뜻하게 떨치게 됐다. 그저 입찰이 잘되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회가 된다면 나에게 또 일이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프리랜서의 삶은 위태로우면서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걸 배운 일주일이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