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두둑 Nov 20. 2023

죄송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 죄송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나에게 돌을 던지는 그대에게

내 눈앞에서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꿈을 꾼 아침이었다.

단단한 벽돌 건물이 하염없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누군가 깔린 것을 보고 소리치다가 잠에서 깼다.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따끔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한테 온 전화를 받고 꿈이 현실로 재현됐다.

무너진 것은 나의 마음, 아래 깔린 것은 나의 존재감이었다.


"그래서 정말 애 안 낳을 거야?"


또 시작이군.

곧바로 스피커폰의 수화음을 조금 줄이고 한쪽 귀를 '내보내기' 모드로 전환시켰다.


너희가 언제까지 둘이서 행복할 것 같니. 

내가 다 키워준다니까. 

왜 남들 다 따르는 순리를 따르지 않니.

넌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난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남들이 뒤에서 욕해.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아이 없이 결혼생활을 하겠다는 것이 엄마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손자를 기다리는 엄마의 애타는 마음에게도 죄송하다.


"미안해."


정말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진심이었다.

외동딸로서 부모님께 손자를 보는 기쁨을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미안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들이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뾰족했다.


넌 생각이 뭐가 잘못된 거니.

사람들한테 창피하다.

내가 널 잘못 키운 걸까.

아니 널 잘못 낳은 걸까.

그래 너희 둘끼리 그렇게 살고 싶으면 앞으로 연락도 하지 마.

명절에도 오지 마.

알아서 살아.

난 너 없다고 생각하련다.


엄마의 가시 같은 말의 끝은 언제나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언제나 엄마를 실망시키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인정받아도

엄마한테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 모두 괜찮다고 해도 엄마는 괜찮지 않았다.

세상 사람 모두 응원해도 엄마는 등을 돌렸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음 화살이 되어 심장을 시리게 찔렀다.


그 이상의 독한 말은 다행히 지금은 증발되어 기억나지 않는다.

망각이라는 방어기제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럴 땐 단기기억이 좋지 않은 ADHD 증상이 도움이 된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오래 담아둘 수가 없다. 어차피.


"말 좀 해봐 어디. 아이 낳는 게 왜 싫은데"

"난 지금이 행복해"

"아니 그게 뭐가 행복한 거야. 착각하고 있네"

"엄만 내가 아이 낳고 불행했으면 좋겠어?"

"그게 왜 불행한 거야"

"어차피 난 엄마 이해 못 시켜"

"아니 말해봐."


도돌이표를 여러 번 찍고 돌아온 대화의 시작에서 

더 이상 입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눈물만 자꾸 떨어졌다. 

내가 말 한마디라도 잘못 내뱉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모녀 재난상황이 발생할 것이 뻔했다.

말을 아껴야 한다. 참자. 


"그래. 니 마음대로 해. 연락하지 마"

그렇게 엄마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후 참았던 눈물을 소리로 뱉어냈다.

복잡한 마음이 얽혀 눈물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과

이런 나를 받아주지 않는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마구 뒤엉켜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울면서 설거지를 하던 그때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여보'

혹시 엄마가 오빠한테도 전화한 건가 싶어 심장이 서늘했다.

다행히 귤 한 박스를 선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엄마하고의 서글프고 속상한 통화 내용을 남편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서

최대한 밝게 답장을 보냈다.


한바탕 쏟아내고 눈물이 말랐을 때 즈음

오늘은 엄마의 속상함보다 나를 더 달래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부터 쓰는 말은 나를 위한 위로다.


괜찮아.

엄마를 만족시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때문에 나의 행복을 타협할 필요 없어.

아이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죄는 아니야.

세대를 이어가지 않겠다고 해서 나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야.

그러니 죄책감 가지지 마.

출산은 부모님에게 갚아야 할 빚이 아니야.

난 나의 인생을 살 거야.

그것도 아주 훌륭하고 멋지게.

죄송하지만 엄마, 아이를 낳지 않아서 죄송하지 않을래요.


글로 쏟아내니 기분이 조금 시원해지긴 하는데

막상 이 글을 발행해도 될까 고민도 된다.

1년 만에 브런치에 돌아와 발행한다는 글이 엄마의 흉을 보는 거라니.

게다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논란의 글이라니. 

비출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만약 이 글을 발행한다면 아마도....

위로가 필요해서일 것이다.

 







 



"


작가의 이전글 나의 불안은 어디서 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