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의 탈을 쓴 올빼미의 하루
안녕하세요.
ADHD 전문 코칭상담사 마인드리프의 허새롬입니다.
며칠 전, SMCC(Seoul Morning Coffee Club)라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이 모임은 아침 일찍 여는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로, 건강한 아침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오전 8시에 카페가 문을 열자마자 첫 손님으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생산적으로 시작하는 것에 진심인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틈에 제가 앉아 있는 것이, 마치 상표도 아직 떼지 않은 새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지만요. 마치 원래부터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릿속에서는 익숙한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 저는 지각의 아이콘이었어요. 5분만 더 잔다고 알람을 껐다가 잠시 후에 눈을 떴을 땐 이미 지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허겁지겁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팀장님의 매서운 눈초리가 제 이마를 뚫을 기세였습니다. 주섬주섬 화장품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면 얼굴에 아직 베개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반복되었던 지각의 아침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침형 인간이 지을만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마치 ADHD가 아닌것 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써본 적이 있나요?
예를 들면 기억 나지 않는데 기억하는 척, 대화 중 집중이 흩어졌지만 열심히 듣고 있는 척, 사실은 허당이지만 체계적인 척, 제대로 처리해 놓은 일은 없는데 생산적이고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척을 한 경험 말이죠.
“남들이 보기에는 저는 굉장히 철저한 사람이예요.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은 저만 알아요"
“우리집은 정말 엉망진창이라 절대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공간은 예쁘게 정돈되어 있어요. 물론 프레임 밖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물건으로 가득차있죠”
‘ADHD 마스킹’은 정식 진단 명칭은 아니지만 성인 ADHD의 사회성에 대해 연구할 때 자주 언급되는 주제입니다. ‘마스킹(Masking)’은 가면을 쓰듯 숨긴다는 의미인데 ADHD의 마스킹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고 수치심과 편견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증상을 숨기거나 억누르는 경향을 말합니다.
왜 이런 모습이 생기는 걸까요? 과거에 ADHD로 인해 누군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험, 실망을 준 경험,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경험, 그로 인해 수치심을 느낀 경험, 거절을 당하거나 편견의 대상이 된 경험이 켜켜이 쌓여왔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마스킹은 때로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모닝 커피를 마시는 모임에서 참새의 마스크를 쓴 올빼미가 된 덕분에 모처럼 아침을 상쾌하고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듯이요.
제가 자주하는 또다른 마스킹은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추임새와 끄덕임 등 온몸으로 듣고 있다는 리액션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 머릿속에서는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때가 많지만 들키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한답니다^^
이처럼 마스킹은 때로 사회적인 상황에서 적응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문제는 과도한 마스킹이 계속되면 더이상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ADHD가 아닌척하기 위해 최대한 저를 감추는 것이 제 유일한 생존방법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ADHD로 인한 증상들을 절대 드러내거나 들켜서는 안되는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모든 상황을 신경쓰고, 통제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하죠.
“남들에게 간단한 일이지만 저는 남들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해야 따라갈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제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진짜 모습이 탄로날까봐 불안해요"
이렇게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남몰래 120%의 에너지를 쓰다 보면 정서적, 육체적 소진이 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낼 수 없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불안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죠. ADHD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린시절에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어요.
“너는 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야. 뭐 하나 야무지게 하지를 못해서 어쩌니"
이 문장은 제 취약성을 건드리는 아킬레스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야무지게 일하기 위해서는 뭐든지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조금 비현실적인 신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 “잘 모르니 도와주세요” “다시 말씀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면 야무지지 못하고 무능한 직원이 되는 것 같아 혼자 해결하려고 밤늦게까지 몰래 사무실에서 끙끙대던 숱한 밤들이 떠오르네요. 지금 그 모습을 생각하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예전에 상담 교육분석을 받는 중 교수님께서 그 시절 애쓰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을 때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ADHD 마스킹은 종종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마치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을 기만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일하면서 적정한 기대치를 설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종종 할 수 없는 것까지 하겠다고 일을 떠맡으면서까지 인정 받으려고 노력해요. 생각해보면 제가 얼마나 무능한지 들키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 같아요"
이런 비현실적인 기대는 자존감을 오히려 낮추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매일 불안할 뿐 아니라 당당하게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마저 그저 운이라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날 것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황에 따라,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행동하고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다만 상황에 맞는 적정 수준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나를 감추기 위한 마스크를 내려놓고 온전한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수치심과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마스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지는 것은 어렵겠죠. 하지만 가끔은 나를 감추기 위해 억지로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하고 수용 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ADHD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기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웨비나를 여는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나를 감추려고 노력하는 대신 애쓰고 있는 나를 더 이해해주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부터 이해 받고 서로 연결감을 느끼는 경험의 장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마스킹에 대해 제대로 알아차리기 위한 질문 몇 가지를 공유해봅니다. 여러 상황에서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래 질문에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저와 코칭세션을 통해 나눠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을 감추고 싶나요?
감추고 싶은 모습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나요?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도움이 되는 전략인가요 아니면 과잉보상을 위한 발버둥인가요?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그룹코칭에 대한 문의가 많았는데 개인상담으로 인해 미루다가 이제서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ADHD 진단여부를 떠나서 동기부여, 시간관리, 감정관리에 대해 제대로 마주하고 싶은 분들께 도움이 될만한 프로그램입니다. 소규모로 진행될 예정이고 조금 더 깊은 소통을 하며 변화를 경험하는 시간이 될 예정입니다.
주중 저녁 그룹과 주말 오전 그룹으로 나누어서 모집 중이니 신청을 서둘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