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루틴'으로 돌아오기 위한 '루틴'이 필요하다.
여러분, ‘루틴’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시나요?
많은 분이 규칙적인 일상이나 반복적인 습관, 모닝 루틴, 저녁 루틴 등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흔히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루틴을 만든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밀 도구로 비춰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루틴'은 일정한 행동 패턴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부담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특히 ADHD가 있다면, 루틴을 꾸준히 지키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죠.
루틴이 잘 지켜졌을 때의 안정감은 물론 크지만, 실패했을 때의 자책감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ADHD를 가진 우리에게는 루틴은 마치 애써 만들어도 한순간 방심했다가 무너지는 모래성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루틴은 잘 지키면 안정감과 효능감을 가져다주지만 지키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과 자책도 만만치 않죠.
오늘은 단순히 규칙적인 생활을 위한 루틴이 아닌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만들어 본 저만의 색다른 루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루틴으로 돌아오기 위한 ‘루틴’입니다.
ADHD가 있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리듬을 찾는 것입니다. 한 번 흐트러진 패턴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이번 주를 꽤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데요. 그룹 코칭을 시작했고, 개인 세션도 늘었으며, 다음 주 웨비나도 준비하고, 새로운 미팅과 학술대회 참석, 개인적인 약속 등 주말까지 일정이 꽉 차 있어서 살짝 벅차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지만, 동시에 정신이 없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갑자기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까 봐, 잘 쌓은 루틴이 무너질까봐 불안감이 올라왔습니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신나서 과몰입을 하다가 에너지 조절에 실패해서 느닷없이 방전이 된 경험이 이미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ADHD에게는 잠시 멈추는 것, 즉 ‘의도적인 쉼’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잠시 쉬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진짜 문제는 그 잠깐의 쉼이 하루를, 때로는 며칠을 통째로 날려버리곤 한다는 점이죠. 그 결과는 안 봐도 뻔합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점점 불편해집니다. 그렇게 계획만 하고 끝내지 못한 일,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쌓이며 불편감은 죄책감으로 변색됩니다. ADHD라면 흔히 겪는 패턴이죠.
그래서 '의도적인 쉼'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다시 꺼진 시동을 걸고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신호를 주는 '시그널 루틴'을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이 루틴에는 3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1.전과 후의 기분이 확실히 전환되어야 한다.
2.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3.10분 이내에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제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뒤 찾은 시그널은
'10분 샤워', '10분 달리기', '10분 정리하기', '10분 요가' ‘10분 스탭퍼 타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저에게 10분은 뭐든 마음만 먹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늘어진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에너지를 얻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해요.
제가 만든 10분 루틴의 특징은 주로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몸을 움직인다는 것,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행동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재정비하는 10분의 루틴을 실행하는 동안 저는 헝크러진 마음을 빗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제는 '10분 달리기'로 다시 생산적인 궤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결과적으로 20분을 뛰었는데, 원래 계획보다 두 배나 더 오래 달렸다는 뿌듯함은 보너스였어요:) 그리고 10분동안 샤워를 하며 무엇부터 시작 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가끔은 달리기 위해 나가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는데 그땐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고 딱 10분 동안 요가를 하거나 10분 동안 청소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돌아갈 준비 됐어?’
우리는 종종 무기력에 빠지거나 일을 미룰 때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혹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절대 저절로 찾아오지 않아요. 그렇다고 기분 전환과 의지를 다지기 위해 꼭 멀리 여행을 가거나 아주 새로운 것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만 하다가 실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제가 ADHD를 관리하면서 느낀 것은 항상 생산적이어야 한다며 자신을 밀어붙이다가 방전되기 전에, 가끔은 터진 계란후라이처럼 늘어져 있는 나 자신을 기꺼이 허락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만의 방법도 필요합니다.
루틴은 우리 삶을 돕는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편안한 루틴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 더 의미부여를 하는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루틴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 루틴이 정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고 있나요? 오늘 하루, 자신의 루틴을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조금씩 변화를 줘보는 건 어떨까요?
건강하고 행복한 ADHD 라이프를 위해, 우리 함께 '나다운' 루틴을 찾아가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