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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ry Nov 21. 2017

함부로 추천하지 마세요.

태도의 가치










함부로 추천하지 마세요.




나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추천하는 작품도 내가 끌리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을 다시 보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조예가 깊지 않다.


어느 날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가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고 말하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정말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친구, 일, 일상, 주말, 음식, 취미 그 외의 여러 가지에 대한 취향 등등.. 이렇다 할 주제 없이 서로 묻고 대답하기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아니고 관심사가 같지도 않은데 대화가 끊이지 않고 잘 되었다.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 나에게 "왠지 oo 씨는 이 영화 좋아할 것 같아요."라면서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여태까지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나에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 스스로 생각해 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영화를 나에게 추천을 해주었다.


막연하게 '내가 미술을 전공했다거나, 어떤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니까, 또는 그것과 비슷한 영화라서' 이런 식의 추천이 아닌, 나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파악해보려 노력한 뒤, 본인이 생각하기에 적절한 영화를 소개해주는 아주 배려 있는 추천이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있는지 묻지도 않고 단지 관심 있어 보인다거나, 또는 영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막연히 자기가 좋았던 작품을 추천해 주는 사람은 더 많다.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대화들은 대개 재미가 없다. 감흥도 없다. 다들 본인이 '왜 그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늘어놓기 바쁘다. 더러 그 작품 하면 떠오르는 다른 작품까지 끌고 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럴 때 나의 반응은 이렇다. 예의를 지키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네요.'라고 대화를 마무리 짓던가 아니면 적당한 호응을 보이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 '난 별로 관심 없으니 말하지 마'라고 할 만큼 듣기 싫은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냥 듣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흥미롭지 않은 주제인 것은 확실하다.



특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만남에 있어서 이런 식상한 대화들이 오갈 때가 많은데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지루하지 않고 뻔하지 않게 영화를 추천해주었고 그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있었으며, 그로 인해 상대로 하여금 그 영화에 대해 궁금증도 품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나 또한 형식적인 질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영화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고 또한 돌아오는 대답에 귀 기울어졌다. 그리고 추천받은 그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실제로 내 취향에 딱 맞았다.



그 후에는 추천해준 영화를 내가 감상한 뒤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서로가 잘 아는 영화이기 때문에 대화는 더 즐거웠다.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소통이 이루어졌고, 서로가 감명 깊었던 장면을 말하고 공감하고, 반대로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아,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혹은 저 부분을 저렇게 느꼈구나' 하면서 새롭게 깨닫는다.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아직 안 본 영화가 많아서 좋겠어요,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부럽네요.'
앞으로 볼 수 있는 명작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신선하게 느껴졌던 문장이었다. 실제로 그 분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안 본 영화가 있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많은 영화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가다 상대가 나보다 이 분야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내가 이 분야에서는 아는 것이 더 많다는 이유로 자신의 느낌을 은연중에 강요한다던지, 내 생각을 들을 때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나의 짧은 영화 인생 중 가장 인생영화로 뽑는 영화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았고, 그 영화에 대한 내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견해도 덧붙였다. 편하고 흥미로운 대화였다. 나 또한 여러 부분에서 궁금한 게 많아졌다.


오랜만의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대화로 인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의미 없는 대화나 시시콜콜한 말장난들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소통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보여준 태도로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대화할 때의 마음가짐이 갖춰져 있어야 배려 속에서 원활하고 즐거운 소통이 이루어진다. 물론 예의 바르게 말하고 듣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성의 있으며 진실되었는지 아니면 그렇지 아않은지는 상대방도 느낄 수 있다.




















진짜와 가짜 구별법.



한 때,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너무 낯설게 느껴지지만 내가 너무 사랑했던 사람. 처음으로 누군가를 깊게 좋아했고,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빠져 본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 후 텅 빈 것 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혼자 보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마음을 열었던 사람이 있었다. 사실 이렇다 할 끌림도 없었고, 대화가 통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그다지 없었다. 일단 그저 외적으로 마음에 들었기도 했고 평온한 상태의 감정으로도 만남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했다.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연애로 인해 감정과 시간을 소모할 여력도 마음의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짧았던 인연의 끝을 보고 난 후 한 가지 느낀 게 있었다. 첫 번째는 나의 잘못과 실수. 두 번째는 서로가 이 관계에 얼마나 성의를 보였냐는 것, 내가 그랬듯 상대방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만남을 뒤로한 채 떠올랐던 한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그 성의에 다시 고마움을 느꼈다. 그 당시 우리는 헤어질 때 바닥까지 보여줬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름다운 이별이 과연 존재할까 의문이다.(있다면 그것은 둘 다 감정이 깊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상처였지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렇기 때문에 곁에 있기 위해, 함께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주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극복하기에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물론 혼자만의 잘못이 어디 있겠냐만은.,


아무튼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성격도 유난스럽고 고집도 세고 자기만의 편견도 있어서 잦은 다툼이 있었고 그 사람에 대한 주변의 평판 또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연애에 있어서는 정직하고 예의 있었으며 상대방을 존중했다. 그로 인해 본인도 존중받았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곧 자기 자신에게 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잠시 스쳐갔던 사람은 다정하고 착했으며 독서나 문화생활도 열심히 했고, 여러 가지로 배울 점도 많았다. 인성도 좋았고 잘은 모르지만 주변의 평판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갔고, 지금 생각해보면 둘 사이에서 재고 따지며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처럼 보였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예의가 없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현재 옆에 있는 상대에게도 존중과 예의가 결여된 행동이었다. 그렇게 재고 따져서 내린 결정과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까지 느껴졌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 한 둘 사이의 무너지지 않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두 경우의 사람을 보면서 느꼈다. 앞서 말하면서 '주변 평판'에 대해 언급을 했던 이유는 주변의 시선과 남들의 말은 그 사람을 대충 아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판이 좋든 안 좋든 나는 내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었다. 사람마다 맞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이 있듯이 겪어봐야 알 뿐이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서 평생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 같은 일일까.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글_유정

사진_영화 <시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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