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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Mar 27. 2023

포기하고 나니 소소한 행복이 왔다.

비싼 수업료 내고 인생공부를 한 셈 치자.

누군가는 말한다.

포기란 배추를 셀 때 쓰는 단어라고.

포기와 놓아버림의 차이는 뭘까?

내가 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이 포기일까, 놓아버림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나는 학교 콤플렉스가 있었다.

원치 않던 대학, 학과이지만 재수도 두렵고, 한편으로는 더 노력할 자신도 없어 지역 국립대 농대를 선택했다. 다행히 장학금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졸업할 때까지 괜찮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계속 학교에 대한 열등감을 지우지 못했다.


취업을 했으나 그곳에서 학교에 대한, 그리고 학업에 대한 열등감은 더 커졌다. 석박사 연구원들 틈에서 나는 연구보조원임을 자주 자각했다. 열등감에 더해진 답답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웠다.  시골지역에 있는 회사 연구소를 탈출하여 다시 덜 갑갑한 집으로 돌아왔고, 친구가 조교로 있던 단과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혼. 출산, 육아와 함께 경력단절. 고민과 성찰 끝에 심리상담으로 편입하며 일을 시작했고 박사과정도 진학했다.




박사과정 진학 9년 차, 수료 6년 차.

사람 사이의 별별 일들,  내가 하찮게 느껴지는 자괴감, 억울함, 열등감 등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어떤 날엔 숨을 못 쉴 정도의 압박과 스트레스도 있었고, 가슴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갑갑한 날도 많았다. 내 일도 아닌 일들도 밤을 지새우고, 주말도 없이 휴대폰과 메일을 확인하며 신경 쓰는 일이 허다하며 앞쪽 이마에는 흰머리가 급격히 늘어났다.


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이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할까, 박사학위를 받으면 내 인생이 더 행복할까? 내 인생이 확 바뀔까? 돈이라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일까?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래도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과 노력이 있는데 박사학위라는 열매를 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멈추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돈을 벌어야 할까? 갈등이 생겼다.


고민을 하며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너무너무너무 까웠다. 그리고 많이 많이 억울했다. 하지만 계속 나의 밑바닥 감정들을 마주하며 누군가를 미워하고,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을 멈추는 것이 나를 위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무능력한 나를 보고 싶지 않은 회피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감정의 고비들을 넘기며 일단 포기했다. 많은 단절이 생겼다. 포기인지 놓아버림인지 모르겠으나 더 이상 가슴에 돌을 얹은 것 같은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드라마를 보아도 전처럼 죄책감이나 불편감이 생기지 않고 즐기게 되었다. 한가롭게 커피를 마실 때에도 머릿속에는 다른 할 일들도 복잡함이 사라지고 오로지 커피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내 일도 아닌 잡무를 하지 않으니 예민함과 신경질이 줄어들었다.


포기하고 나니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일을 우선순위에 두니 즐거워졌다. 이상한 잡무들로 밤샘작업을 하던 내게 남편은 호구냐고 화를 내기도 하고 수료한 채 몇 년을 지내니 가장 쓸데없는 것이 박사수료라고 약간은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아직도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지만 괜찮다.

그래,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간의 시간과 돈과 노력들, 수많은 일들은 비싼 인생 공부한 값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을 보는 눈도 키웠고, 피해야 할 사람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그냥 배워지는 것은 없나 보다. 공부에는 수업료가 드는 법이다. 일단 나는 소소한 일상의 편안함과 행복들을 느끼며 다른 다양한 도전들을 해 나갈 것이다. 콤플렉스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그저 나의 행복과 즐거운 도전들도 작은 성취를 해 나가며 한 발짝씩 성장하고 싶다.


어렵게 포기하고, 어렵게 놓아버렸으나

다른 기회나 행복은 더 많이 잡게 되기를 기대하며 나의 포기에 비겁한 변명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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