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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Jan 29. 2022

불만이 있어요(요시타케 신스케)

-그림책 특강 후기-

"이것은 설레요"

"이것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있는데 저는 없어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것은 어른들은 많이 쓰고 아이들은 조금밖에 안 써요"

"이것은 어떤 때는 빨간색, 어떤 때는 초록색이에요"

"이것은 많을수록 좋아요"

이쯤 되면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열 다섯 명 아이 중 두 명에겐 답을 보내지 않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만한 얼굴 표정을 짓는다. 일명 '라이어 게임.' 답을 받지 못한 두 명은 다른 아이들의 힌트를 보고 자기도 답을 아는 냥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줌으로 하는 수업이어서 자칫 지루할까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활동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어 간혹 하는 게임이다. '라이어를 찾아라' 한 명은 결국 힌트를 많이 얻지 못해서 우물쭈물하다가 모든 이들의 지적을 받아 라이어라 자수했고, 나머지 한 명은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데 성공했다. 가장 결정적인 힌트는 돈의 색깔이었단다. 빨간색도 있고, 초록색도 있는 것, 많을수록 좋고, 설레는 것. 그래서 '용돈'이라는 답을 찾아 자기도 답을 아는 것처럼 그렇게 잘 건넜단다. 아이들의 신통방통 대답도 재미있지만 자신들의 상황에 이입되어 침 튀기며 불만을 이야기하는 녀석들이 재미있다. 


이렇게 마음을 열고 '불만이 있어요'란 그림책을 함께 하며 아빠와 딸 사이의 불만에 공감해 가며 맞다 끄덕였다가 샘통이다 웃어가며 두 시간을 훌쩍 보냈다. 

 사실 아이들의 불만은 거기서 거기였다. 우리가 익히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용돈 문제에서부터 부족한 자유 시간까지. 주인공 딸의 말과 행동을 보며 자기 자신을 보듯 흥분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침통함마저 느끼게 한다. 

불현듯 팔베개를 하고 누워 생각해 보니 어른들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버린 주인공.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불평등 문제로 두 눈에 쌍심지를 켠다. 왜 어른은 마음대로 늦게 자냐며, 왜 목욕하는 시간을 어른 마음대로 정하고, 멋대로 하라고 해놓고서 멋대로 하면 왜 화를 내는지, 왜 갖고 싶은 인형은 사 주지 않는지. 아이는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는다. 이에 대한 아빠의 변명은 뭐였을까?

사실, 이런 문제를 잘 다루지 않으면 자칫 훈계조가 되어 식상한 느낌을 갖게 하는 그림책도 많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읽는다는 행동이 지루하지 않고, 작가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비판하고 대화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유쾌하고 묵직한 한 방이 남는 그런 것인데 신스케는 이런 고민을 유쾌한 상상력으로 깔끔하게 해결해 버린다. 산타클로스가 등장하고, 목욕 악당들을 끌어들이고 외계인까지 불러 들인다. 그리고 얌체 같은 아이들의 행동을 스리슬쩍 지적하며 기가 막힌 반전으로 그림책을 끝낸다. 하지만 끝낸다고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만만치 않은 아이의 한 방이 기다리고 있다. 얌체 같은 아이를 말하면 잘못해다 할 줄 알았는데 결코 미워할 수 없고 야단도 칠 수 없는 귀여운 능청으로 결국 이 싸움(?)의 진정한 승자로 아이의 손을 들어 준다. 깔끔하고 웃음이 가득 하지만 결코 가볍게 웃어 넘기기엔 뒤통수가 싸늘하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속 아빠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다들 실소를 터트린다. 우리가 어린애냐며. 재미있기는 하지만 조금 유치하다는 반응이다. 저런 아빠의 말에 속는 아이들이 어디 있냐고. 그래? 그럼 주인공의 고민이나 불만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라는 나의 질문에 어린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어린애들은 솔직하게 다가가 마음을 공감해 주는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 어린애라고 했던 나의 잘못을 깨닫는 순간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마음 읽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사람 때문에 다친 마음은 나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는 진실된 마음에 풀리고, 방향을 모르고 방황하는 이들에겐 겪어 본 사람의 솔직한 충고가 도움이 될 것이며,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엔 무조건적인 위로와 조언보단 마음속 찌꺼기를 모두 내뱉을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 주고 토닥여 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불만'이란 단어로 아이들과 함께 했던 고민들은 나의 '불만'으로 옮겨 와 본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딸만 찾는 부모님에 대한 불만,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 내 주위 상황에 대한 불만까지. 파고 파도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불만이다. 

하지만.

왜 몰랐을까? 불만은 결국 내 욕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불만은 나의 게으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왜 모를까? 결국 해결책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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