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소설'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생겼다. 나의 생활을 끄적이던 '수필'도 재미있지만 가상의 인물을 만나고 사건을 기획해 보고, 나만의 색깔을 입혀 이리저리 새로운 결말을 내보는 그 과정이 피곤하고 힘들지만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조사해야 하고, 인물의 성격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며 아니, 때론 성격과 엇박자인 행동을 해도 그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해야 하고, 사건이 퍼즐맞추듯 타당성이 있어야 했다. 하나를 맞추면 하나가 엇나가고, 간신히 두 개를 연결해 놓으면 다시 또 하나가 삐걱거렸다. '글'은 '글'로 말하고 대답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 이래도 저래도 결론이 안 나면 답답하고 머리가 깨질듯 아팠다. 그래서 소설가들을 존경하게 됐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 도서관을 기웃거리며 소설에 대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전혀 다른 이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첫 모임을 한다기에 그저 응원차 지금은 시간이 없어 참석하지 못할것 같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만나기로 한 커피숍으로 나갔다. 줌(ZOOM)으로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고, 우리끼리 잘난 사람, 못난 사람없이 느낌을 공유하고, 소설가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으며 짧은 회수였지만 이미 동지였다는 걸 그곳에서 확인했다.
제주시에서 남원이면 정말로 먼 거리일텐데, 한달음에 달려와 준 회원부터 떼지지 않는 아이와 함께 나타난 회원, 봉사 활동을 하면서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소설이라는 글에 대한 열망으로 그렇게 모인 사람들. 난 그저 한 발만 담그고 인사만 하고 나올 얄파한 요량으로 나갔던 것인데 그들의 열정과 글에 대한 사랑에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 나는 정말 이기적이었구나'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순수하게 글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글이 좋아요', '책이 좋아요'라는 말을 저렇게 해맑게 할 수 있을까?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난 그동안 글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자만하지 않았나? 너무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지 않을까? 내 판단만이 옳다고 이리 저리 구슬을 꿰매고 있진 않았을까? 사람들의 말 속에 빠져있지 못하고 나 혼자 나의 지난 모습을 떠올렸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우리 모임은 한 달에 두 번씩 줌(ZOOM)으로 만나고 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컴퓨터 앞에 앉을 때면 대부분 민낯의 꾀죄죄한 모습이지만 그저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 하고 있다. 우리끼리 얼마나 전문적일 것이며 얼마나 예리할 것인가? 하지만 컴퓨터 안에서 우린 깔깔거리며 웃고 있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고 칭찬해 주고 있다. 그 칭찬이 정말 잘 써서가 아니라는 것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글을 함께 하는 동지로서 글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게, 게을러지지 않게 손을 잡아 주고 있다. 그동안 그림으로 개인전 하는 회원이 생겼고, 책을 출간하게 된 회원들도 생겼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있는 요즘,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도, 다시 책 좀 읽어보자는 여유가 생긴 것도 이런 만남이 계기가 되어 준다 여긴다.
항상 글이 반짝일 수는 없다. 하지만 긴 글 속 어느 한 부분쯤 나지막히 반짝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다시 써 보자.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다시 사랑해보자. 그리고 겸손해지자. 내가 쓰는 글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