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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Jan 26. 2023

작정하고 나쁜 시댁은 없다

착하지 않기로 작정한 새댁이 있을 뿐

"사돈댁에 도마도를 좀 보내드렸으면 싶은데, 그랄라 카믄 느그가 대구를 먼저 들렀다 가는 게 안 좋겠나? 친정에서 도마도를 잘 잡수시나?"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꽃힌다.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마다 거의 매번 대구에 먼저 들르건만, 굳이 '대구에 먼저 들렀으면 좋겠다'는 시어머니의 청탁전화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단순히 토마토 전달책이 되어달라는 부탁은 아닐 터. 13년 차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출제한 숨은 의도 찾기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머니, 토마토는 참 좋은데, 혹시 명절에 따로 생각해 둔 일정이 있으세요?"

"그기 아이고 안 있나, 이번에 친척들 다 모이가 식사를 좀 했으면 싶은데...식당이 평일에나 열지 싶다. 그라이께네 느그가 토요일 점심에나 맞춰서 오면 내가 미리 예약, 예약을 할라 칸다."

역시. 토마토는 미끼였을 뿐이고, 나는 미끼를 물어븐 것이여.

"명절마다 노상 큰어머니(시어머니의 손위 동서)가 느그 왔다 갔느냐고 묻는데, 거짓말로 둘러대기도 내가 마음이 안 편하고. 이번에는 봤으면 싶어."

친아들과 친손주를 지척에 두고 사는 큰어머니가, 조카와 조카 며느리에 대한 그리움이 무에 그리 깊을까마는 그렇게라도 당위성을 확보하고 싶은 시어머니의 다급함과 민망함을 안다.


"어머니도 참. 가족끼리 얼굴 보고 식사하면 좋지요. 그걸 왜 그리 어렵게 말씀하세요?"

"내가 완이한테는 고마 춥고 다들 힘드니까, 이번에는 식사고 인사고 말자 캤어. 캐나놓고 생각하니 안 되겠는기라. 내 또 말 바꿨다고 완이가 뭐라 안 카겠나?"

"괜찮아요. 제가 더 심하게 어머니 흉 보면 아무 소리도 안 해요. 제가 잘 얘기해 놓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하하하. 그렇나. 그래 알았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시어머니와 원만한 대화-어느 한쪽도 마음이 상하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 찜찜함을 남기지 않는 대화-가 가능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때는 시어머니의 '돌려 말하기 스킬'이 은근한 강요로 느껴져 속상하기도 했다. 시어머니 역시 나의 '거침없는 말본새'가 적잖이 당황스러우셨을 게다.


고부 사이로 13년을 함께했음에도 시어머니가 나를 따라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거나, 내가 시어머니를 본받아 한결 완곡하게 말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시어머니는 나의 직설화법을 '시원시원함'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나는 시어머니의 완곡화법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를 취할 수 있게 됐다. 화법은 다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몇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통화를 마치고 시어머니의 뜻을 남편에게 전달할 때까지는 참 좋았다. 이때 바로 글을 썼더라면 좀 더 훈훈한 글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 글을 쓰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은 화력이다. 화, 분노, 불에 기름을 붓는 기타 부정적인 감정들. 


며칠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애미야, 느그가 금요일에 온다 캤나."

"예. 애들아빠 근무 끝나고 금요일 밤이요."

"뉴스를 보니까네, 금토일은 날씨가 좋은데 월화가 그렇게 춥단다. 고마 눈이 많이 온단다."

맹세컨대 이때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원체 걱정이 많은 분이다. 게다가 눈길 운전은 웬만한 베테랑 운전자도 겁내는 악조건이니 충분히 걱정하실 만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토요일 점심에 식당을 예약하고 스무 명의 시가 친척들에게 전화까지 돌려놓은 마당에, 어차피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아마 시어머니도 내려오지 말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운전 조심하고 잘 챙겨입고 오라는 당부겠지.


"그래요? 아이고 옷 잘 챙겨 가야겠네요."

"겨울이라 추운 건 예사로 치는데 눈이 그리 온다카네. 대구야 본래 눈이 안 오지만도...아래쪽으로는..."

지도상으로는 친정이 시가보다 아래쪽에 있다. 이때부터 기분이 좀 이상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분석 회로를 차단했다. 화자의 의도를 속단하지 말지어다. 특히 시어머니와의 대화에서는 상대가 입 밖으로 낸 말소리, 그 이상의 것을 듣지 않는 게 좋다.

 

"어머니, 요즘 제설도 잘 되고 해서 괜찮을 거예요. 영 눈이 많이 오면 애들아빠 휴가 써도 되고요."

"그래도 눈이 오면....느그 왔다갔다 하기 안 힘들겠나? 길도 미끄럽고...애비도 고생이고...다행히 대구는 눈이 안 오지마는...월요일부터는 날도 춥고 또 눈이 온다 카니까네..."

분석하지 말자, 지레짐작하지 말자, 무수히 되뇌었지만 같은 말만 반복하는 데는 장사가 없다.


"어머니, 그랄라믄 다 안 가뿌러야지요. 아 차가 움직이는디 어디는 가고 어디는 안 가고 하겄어요."

이런 제기랄, 입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걸 보니 흥분한 게 틀림없다. 아, 안돼. 멈춰, 내 주둥이!

"그기는 그런데, 눈이 오면 운전하기가 안 좋으니까, 금토일은 날씨가 좋은데 월/화에 눈이 온다카네."

시어머니의 완곡화법은 집요하다. 대놓고 말하자니 미안스러워 빙빙 돌리면서도, 당신의 뜻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같은 입장을 고수한다. 이쯤되면 '완곡'이 아니라 '완고'화법 아닐까?


결국 곧은 혓바닥을 가진 며느리는 제 버릇 개 못주고 직설화법을 시전하고 말았다.

"어머니, 금토일은 날씨가 좋으니까 대구에 내려오고, 월화는 눈 오니까 친정에 가지 말라는 말씀처럼 들려서 제가 엄청 서운한데요? 저는 어머니 친정 식구들 모이는 자리에도 같이 가잖아요."

"아이다, 아이다. 내 그런 말이 아이고. 내가 걱정이 많아서 노파심에 안 카나. 항상 양가가 이래 멀어가지고 느그 다니는 동안에 내가 노상 걱정이다."




어머님, 그런 말씀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 건 저의 지레짐작일까요?

그저 걱정 많은 시어머니를 하필 생각 많은 며느리가 비뚤어진 시선으로 보는 걸까요?

그렇다면 어머님, 어머님의 노파심은 어째서 항상 며느리가 친정가는 길에만 일렁이는 걸까요?


묻어두었던 감정과 기억들이 순식간에 와락 쏟아져 나왔다.


어지럼증이 유독 심해 정신을 잃기도 했던 8개월 임산부에게, 큰집 물목(큰집 며느리가 큰집에 보내는 예단)들어오는 날에 맞춰 혼자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오라고 권할 때는 어찌 그리 근심 한 점 없이 평온하셨는지. 출산하고 한 달 되던 날, 스무 명이 넘는 시가 친척들을 대동하고 우리 친정집으로 들어오시던 날엔, 산모 돌보랴 아기 돌보랴 정신이 없던 안사돈 걱정은 안중에도 없으셨는지. 산후조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대구에 들러 아기를 보여주고 가라며 온 식구를 다 불러모았던 그날은, 한여름 낮의 찜통 같은 더위도 마냥 포근하고 훈훈하게만 느껴지셨는지. 그 많은 순간마다 시어머니의 노파심은 어디에 꼭꼭 숨어 있었는지.


"아도 어리고 날도 추운데 오가면서 감기 안 걸리겠나? 아버님도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고마 친정에는 날 풀리면 가는 게 안 좋겠나?"

시어머니가 날이 춥다며 한사코 나의 친정행을 반대하던 그때, 아이는 7개월이었다. 시어머니의 노파심은 왜 이다지도 선택적이고 대구중심적인가?




가슴 속에 일어나는 감정의 찌꺼기들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의문을 꾹꾹 누르며 말소리에 웃음기를 섞었다.

"어쩌겄어요, 어머니. 그나따나 이렇게 만나브렀는디. 경상도 아들래미랑 전라도 딸래미랑 만나서 경기도에 살기로 했응게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잉?"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아 여전히 사투리 일색의 문장이었지만, 힘겹게 띄운 나의 휴전 제의를 시어머니는 명민하게 알아채고 받아들였다.

"맞다, 그래. 우야든동 조심해서 온네이."


시어머니의 아들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부당한 요구에도 무례한 말에도 그저 네네 웃어보이기만 하던 새댁이 더 이상 착하지 않기로 작정했던 날을 기억한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시어머니의 제안에 묵묵부답 부화뇌동으로 일관하는 시가의 남자들을 보다 못해 마침내 "어머님, 저는 그렇게 안 하고 싶어요." 목에 걸린 한 마디를 뱉았을 때,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나의 세상을 기억한다.


'착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상대가 선을 넘어올 땐 선을 넘었음을 알리고, 무작정 참다가 터뜨리지 않도록 그때그때 내 생각을 말하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각오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취했던 나의 태도와 언행을, 시가라 해서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착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나서부터, 나는 시가가 편해졌다.


수/우/미/양/가 로 며느리 점수를 매긴다면 아마 나는 '가'언저리에 있겠지. 빼어나지도 넉넉하지도 아름답지도 양호하지도 못한 며느리지만, 가능성은 있는 상태. 어쩐지 희망적이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내게 낙제점을 주신다 한들 이 착하지 않은 며느리는 결코 이의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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