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부디 행복하세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라트비아 리가에 도착했다.
무려 50유로라는 거금을 주고 탄 야간 버스는 불편했다. 의자가 놀랍도록 딱딱했고, 통로 쪽 자리인 나는 도저히 머리를 기댈 곳이 없었다. 열댓 명의 작은 악마들이 중학교 수련회 버스에 뜬금없이 올라탄 것 같은 밤샘 수다 공격을 퍼부어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이른 아침 도착한 발트 3국의 첫 도시 리가.
숙소 역시 쉽지 않았다.
나름 유럽인지라, 예약 없이 세 군데 숙소를 찾아갔더니 예상했던 가격보다 비싸거나 방이 없었다. 방향을 틀어 새로 찾아온 숙소도 30분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아 추위에 떨었다. 오랜만에 힘든 이동이었다. 이제 세 번째 유럽이니 나에게 나름 익숙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완전한 문명에 들어섰다 생각했는데 수월하지 않았다.
하루 7유로의 요금을 결제한 후, 체크인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부엌 한편 방명록을 뒤적였다. 그리고 이 쪽지를 보았다.
발뒤꿈치가 터져서 피가 새어 나오고, 긴 이동에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어깨와 허리가 미친 듯이 아픈 이 여행은 솔직히 쉽지 않다.
그런데 나와 똑같이, 나처럼, 당신은 "행복합니다"라고 전한다.
이 여행을 우리 엄마, 혹은 아빠가 하신다고 생각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질질 끌려다니며 말릴 것이 분명하다. 내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두 분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는 7살, 생일날 내 볼에 뽀뽀를 해주던 남자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 17살, 첫 모의고사에서 수리 4등급을 맞고 울었던 기억이 낭랑하다. 어느덧 27살이 되었다. 숫자는 빠르지만, 세월은 느리다. 이것은 두 분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어느새' 27살이 되었던 것처럼, 두 분도 '어느새' 60대가 되셨으리라. 내가 꿈을 이뤄가는 동안 두 분은 '딸이 꿈을 이뤄가는 꿈'을 이루는 중이시리라.
내가 살면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 일을 하는 과정이 얼마나 값지고 벅찬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지영이의 아빠', '지환이의 엄마'가 아닌 현심씨와 응주씨로 살아가실 수 있도록 여행을 보내드려야겠다.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셨지만, 자신만큼은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부디 많은 젊은이들에게 "행복합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셨으면.
이제 나의 꿈도 당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