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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Jul 26. 2022

너가 갔다

내게도 찾아온 펫로스 증후군

콩이가 갔다. 

갔다니, 콩이 집은 여긴데. 밖에 나가는 게 싫어서 산책조차 안 좋아하는 괴상한 강아지였는데, 갔다니. 가긴 어딜 가니 너가. 그것도 혼자서.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생각하려는데, 강아지도 사람도 싫어하는 너에게 우리 옆보다 좋은 곳이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널 위한 무지개다리는, 강아지별은, 그려지지가 않아. 

펫로스 신드롬에 관련된 모든 글들을 읽는 중인데, 좋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다더라. 너에게 좋은 곳은 우리 집인데, 그마저도 거기서도 또 기다려? 진짜 미치겠다. 하나도 와닿지가 않아.

추위를 많이 타는 아이라 여름을 좋아했다. 그 좋아하는 여름을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갔다. 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비인데, 하필이면 비 내리는 장마철에, 이 비만 지나가면 너가 좋아하는 쨍쨍한 여름이 시작인데 그걸 기다리지도 못하고 너는 갔다.

마지막으로 콩이를 본 게 죽기 겨우 일주일 전이었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까랑까랑하고 큰 목청으로 나를 반겼다. 장난감을 던져주니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게 불과 일주일 전이다. 나는 누누보다 콩이가 우선이었다. 그게 당연했다. 내 20대에서 너를 빼면 남는 게 몇 개 없다. 

콩이가 아프고 살이 빠지면서 속이 좀 상했지만 솔직히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어리니까. 요즘은 강아지 기대수명도 15년을 훌쩍 넘겼다. 수술이 가능할지 간수치 검사를 받을 때도 병원에선 건강하다 했다. 

그런데 콩이가 갔다. 

마음의 준비라는 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하나도 준비가 안됐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맞는 건지, 미칠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이렇게까지 울어본 게 처음이다. 몇 번을 토하고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식을 듣고 잠옷바람으로 벌써 재가 되어버린 콩이를 만나러 친정으로 가는데 택시비를 찍어보니 25,000원이었다. 지하철을 탔다. 체면이 뭔지 사람이 많으니 눈물이 안났다. 그제야 잠옷인걸 알고 구석에 숨어섰다. 사람이 이래. 사람이란 존재가 이렇다고. 너가 나를 사랑한것만큼 나는 너를 사랑할수가없다. 정말 온 맘 다해 너를 아꼈다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 25,000원과 쪽팔림이 더 중요한거다. 

정신나간 인간처럼 울다 목이 마르면 물도 마시고 배고프면 밥도 먹는다. 아빠가 퇴근하기전에 콩이는 물도 밥도 먹질않았는데. 사람이다. 나는 진짜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콩이가 갔다. 그러고 고작 이틀 지났지만 나는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누누들 산책을 시키고 산다. 살아간다. 살아진다. 그냥 문득문득, 망가진 기계처럼, 시도때도없이 물이 줄줄줄 세면서 삐걱거리지만, 어찌됐든 산다. 살고있다. 이런 글을 쓰면서 널 추모하고, 산다. 살아. 

콩이가 가버렸다. 적응이되질않는다. 반려가족과의 이별은 두번째지만 더 아프면 아팠지 아주 조금도 괜찮지가 않다. 

엄마와 대판 싸우고 방에서 혼자 울 때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벽에 몰래 울 때도, 너는 내 옆을 지켰다. 그런데 너가 없다는 이유로 울려고 보니 정말로 너가 내 옆에 없어서 나는 정신을 못차리겠다.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새벽동안 앓는 소리 한 번도 없이 조용히 너답게 갔다는게 더 마음이 아팠다. 

사후세계라는 걸 믿지않지만 믿어서 생기는 거라면 믿고싶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아직 못해준말이 너무 많아서 콩이를 다시 만나야한다. 이 세상에 없어서 몰랐던, 우리집보다 더 행복하고 편안하고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무지개나라에 간 거면 좋겠다. 그래야만 한다. 

콩이가 갔다. 그런데도 나는 너무 오래도록 살아야한다는게 아프고 슬프다못해,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나서 누구한테라도 화풀이를 하고싶은데 도대체 대상이 없다. 이러다간 겨우 13년만에 너무 빨리가버린 너에게 화살이 갈까봐 무섭다. 짧게, 조금만 슬퍼하고싶다. 분명 너또한 그걸 바랄테니까. 너는 늘 우리만 생각하니까. 


너를 위해 내가 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너가 우리를 위해 살아주고 있었다. 후회가 되는게 너무 많다. 그 때 병원을 갈걸. 그 때 병원을 가지 말걸. 좀 더 자주 보러갈걸. 너를 혼자 두지 말걸. 더 맛있는 거 줄 걸. 

너의 죽음에 내 책임이 0%가 아니라 나는 숨이 턱턱 막힌다. 

잘가, 내 소중한 동생. 내 강아지.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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