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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Dec 07. 2022

수백번의 망설임 중에 마주친 아이

내가 티비에 출연하고 나서 가장 많이 온 연락은 후원이나 진료문의가 아닌 입양을 해달라는 요청들이었다. 인터넷 메시지, 메일, 댓글, 병원으로의 전화 등 나와 연결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반려동물을 키워달라는 부탁들이 쏟아졌다. 나는 매번 거절하였고 그 과정은 나를 매우 지치게 했다. 한없이 가엾은... 그리고 그 아이를 더 이상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 구출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외없이 모든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있는 나의 아이들만으로도 이미 포화상태이고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내가 꿈꾸는 강아지 유토피아가 아닌 그냥 보호소에 불가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만두가 병원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언제나 차분하고 따뜻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물병원에서 열심히 진료를 보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흡사 도인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나를 만나고 싶어서 오셨다는 할아버지를 진료가 끝나고 만나뵙자 자신은 지리산에서부터 나를 보기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얘기를 들어보자 그 할아버지도 자신의 개를 나에게 맡기고 싶어서 오신 것이었고, 나는 난색을 표하며 개를 맡아줄 수 없다고 거절을 하였다. 근데 그 할아버지가 그 개를 이미 데리고 오셨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밖에 나가 아이를 보았는데... ‘이런...’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아이는 한쪽 눈이 실명되어 있었고 세상 착한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만두가 처음 병원에 온 둘째날 사진이다. 열무 소파를 차지하고 개껌을 먹고 있다. 만두를 위해 같은 모델의 소파를 들여놨다.]

내가 이제까지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가 사람을 좋아하는데 아무도 없는 지리산에서 지내는게 마음이 아프고 나이도 많은데 자꾸 산 속으로 들어가서 며칠식 지내는게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물론 울타리를 치면 해결되는 문제이고 그 할아버지가 시간을 내서 아이를 돌봐주면 될 일이지만... 이미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해결하기에는 벅찰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의 목줄을 잡고 동물병원으로 들어왔다.   

  

[만두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진드기가 붙어있어 미용을 하고 목욕을 하고 옷을 입혀주었다. 여자아이라서 핑크핑크하게 꾸며보았다.]

그 아이의 이름은 ‘만두’가 되었다. 엄마가 열무와 만두가 어울린다면 그 아이 이름으로 ‘만두’를 점지해주셨다. 그렇게 나의 아이가 된 만두는 세상 겁쟁이에 세상 착한 순둥이로 내곁에 머물게 되었다. 만두는 예전의 열무처럼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집에 여러번 데리고 가보았지만 아직 친구들이 무서운지 집 앞에서 좀처럼 들어오지를 않았다. 만두도 열무처럼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게 애들을 기다려 주는 것이기에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사이가 좋다. 셋이서 엄청나게 장난을 치고 노는 건 아니지만 나름 질서있게 잘 지내고 있다.]


만두는 병원에서 인기 만점인 아이다. 보호자분들은 처음엔 진돗개만한 크기에 놀래시지만 이내 만두의 매력에 빠지신다. 이렇게 순하네는 처음본다고 다들 입을 모으신다. 나는 그럼 은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만두가 이렇게 예쁜아이예요. 사랑이 가득한 아이예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나의 병원에는 이제 만두, 열무, 꾀복이 이렇게 식구가 있는데 다들 너무 순하고 얌전하다고 어떻게 이렇게 애들을 차분하게 키우시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나는 별다른 훈련을 시키지 않았는데도 애들이 조용조용할 뿐이라 뭐라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만두는 천성이 그런 것 같고, 열무랑 꾀복이는 집에서 실컷 뛰어놀아서 병원에서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고 장난치고 배도 부르면 크게 문제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만두를 이뻐해주면 어디서 열무가 달려와서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면 착한 만두는 짜증한번 안내고 내 사랑을 나누어 준다.]

며칠전에도 입양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거절했다. 수많은 거절 속을 뚫고 만두가 내게로 왔다. 만두의 순한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나의 아이구나...’ 그렇게 나에게 온 만두는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며 산책도 실컷하고(만두는 우리 아이들을 피해 감나무밭으로 산책을 다닌다.) 매일 맛난 밥도 먹으면서 말이다. 나는 이쁜 만두를 보며 ‘너를 안데려왔으면 어쩔 뻔했니...’라고 여러 번 되뇐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거절한 많은 아이들이 떠올른다. 나에게 입양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 절실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제는 그만해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내가 다 구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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