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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Apr 02. 2023

오랜만에 드리는 봄소식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나는 추위를 너무 타서 이제껏 나보다 추위를 타는 사람을 본적이 없을 정도이다. 바깥일이 많은 시골에서 겨울을 지내는 건 나에게 몹시 힘든 일이다. 게다가 올겨울은 병원 일로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바빴다. 그런데 드디어... 그 겨울이 가고 거짓말같이 따뜻하고 보송한 바람이 불어오자 잔뜩 긴장하고 웅크렸던 나도 좀 여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배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산책하고 있다. 나중에 배꽃이 떨어지면 꽃길이 되서 더 아름다워진다,]


과수원에도 배꽃이 활짝 피었다. 올해는 벚꽃도 일찍 피어서인지 배꽃도 다른 해에 비해 일찍 피어났다. 배꽃이 핀 과수원을 아이들이 신나게 돌아다니고 나도 향기로운 날씨를 만끽하며 걸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요즘에는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오래하고 싶은 마음에 기상시간을 30분 일찍 당겼다. 애들도 실컷 산책을 해야 내가 병원에 있는 시간 동안 정신없이 낮잠을 잘테니 조금 덜 미안했다.     


[우리 마린이는 부르면 어디서든 달려온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마린이가 보이지 않아 불렀더니 번개같이 뛰어왔다.]


한달에 2번 보호소 봉사를 가는데 한번은 봉사가는 날 비가 왔다. 애들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다 다 젖을 까봐 애들을 안에 넣어놓고 보호소에 다녀왔는데 말썽쟁이 트리가 혼자 밖에 나와 있었다. 근데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트리의 모습을 보고 같이 봉사하시는 봉사자분이 “어디 전쟁났어요?” 그러셨다. 우린 트리 모습에 다 빵터져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트리를 씻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냥 재밌지만은 않았다. 트리는 어디에 가둬놔도 다 나온다. 덩치도 작지않은데 어떻게 탈출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날 트리가 싫다고 야단하는 걸 잡아서 목욕을 시켰다.  

   

[트리야, 이건 좀 심한거 아니니? 혼자 무슨 훈련이라도 받다가 온거니? 엄마는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구나~ㅠ.ㅠ]


산이와 들이에게 캣타워를 선물한지 3개월이 지나서야 캣타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큰마음 먹고 구매한 원목 캣타워를 본 척도 안해서 엄청 상처받았었는데 어느 날 고양이 방에 가보니 산이가 캣타워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기쁘던지... 고양이님들은 그저 내가 사준 선물을 사용만 해줘도 감개무량 감사하게 되니 정말 요물이 아닐 수가 없다. 그 뒤로 들이도 잘 올라가고 있다. 원래 산이와 들이를 동물병원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들이가 시력이 좀 안 좋아서 사회성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낯선 동물과 사람들의 방문이 잦은 환경이 들이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일 것 같아서 그냥 집에 두기로 했다. 

     

[산이가 특히 캣타워를 좋아한다. 캣타워를 창가에 설치해 줬더니 거기서 밖을 보는걸 좋아한다. 들이를 위해서라도 산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병원에 ‘웅’이라는 고양이가 있었다. 보호소에 있던 아이였는데 넉살이 좋아서 손님 맞이 고양이로 적격이여서 입양을 했다. 웅이는 오시는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보호소에서 온 다른 아이들도 잘 보듬어 주었다. 웅이는 캐릭터가 코믹에 가까워서 손님들은 대기 시간에 웅이랑 노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TV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매체가 일절 없어서 대기 시간이 좀 지루할 수도 있는데 그 빈 공간을 웅이가 채워줬다. 그런 웅이가 며칠전 세상을 떠났다. 웅이는 산책냥이 였고 날씨가 좋아지면서 점점 산책 시간이 길어지고 범위도 넓어졌다. 어쩔때는 퇴근할 때까지도 안들어와서 내가 밤 12시에 나와서 넣어준 적도 있을 정도다. 그날도 퇴근할 때까지 웅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밤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 산책을 하는데 마린이가 뭐를 물고 오길래 봤더니 웅이였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 웅이는 차갑게 식어있는 걸로 보아 이미 죽어있는 웅이를 마린이가 물어온 것 같았다. 며칠간 간호사와 나는 손님만 없으면 눈물바람이었다. 뭘해도 웅이 생각이 났다. 고양이별로 떠나기엔 웅이의 삶이 너무 짧았다. 그렇게 가버리기엔 아까운 아이였다. 웅이가 너무 보고싶어 어찌해야 좋을지 모랐다. 정말이지 이별은 매번 고약하게 힘들다. 내 곁에 있는 아이들과 언제 이별할지 모르니 하루하루 정말 사랑을 듬뿍주며 지내야겠다고 또 다짐했다. 

    

[넉살좋은 웅이는 아무데서나 누워서 배를 보이고 있곤 했다. 사실 저 쿠션은 열무자리인데 자기가 차지하고 있어서 열무가 웅이 배 위에 장난감을 두고 갔다.]


병원도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나는 나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인 것 같다. 그래서 내 병원을 찾아오시는 한분 한분, 그리고 한 아이, 한 아이 다 정성을 들여 치료를 한다. 사람이 참 욕심이 많은게 이 정도로 병원이 자리잡은 것도 기적인데 또 다른 걸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병원 일에 치우쳐있는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진료가 많아지면 수의사 선생님 한 분을 더 모셔 와서 나눠서 진료를 보고싶다. 그래서 글도 쓰고, 울 애들하고도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


[보호소에서 아파서 온 아이를 전기방석 위에 자리를 잡고 꼭 안아주고 있다. 웅이야... 고마웠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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