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영 Jan 21. 2024

시간의 속도

하루하루 일상은 잘도 흘러간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건지, 동물병원과 아이들 돌보는 일상이 바빠 해가 뜨기가 무섭게 해가 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요즘 나의 일상은 잘도 흘러간다. 하루를 온전히 빼곡하게 채워서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나의 인생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아주 정성들여서 채워나가는 기분이 든다.    

 

[열무가 원래 누워있던 쿠션인데 동생들이 와서 투닥거리다 잠이 들었다. 착한 열무 누울 자리가 없다고 나를 쳐다본다.]


큰 사고 없이, 큰 근심·걱정 없이, 하루하루가 부드럽게 굴러가는 날들을 나는 사랑한다. 이렇다할 재미난 일도 남들에게 무언가 얘기할만한 큰 이벤트도 없지만 나는 오히려 잔잔한 날들이 더 좋다. 잔잔한 날들 속에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 떠드는 소리, 킁킁거리는 소리를 듣는걸 좋아한다. 내가 너무 들떠있거나 신나있으면 이런 소리들이 잘 안들린다. 아이들의 눈빛도 눈에 잘 안들어오고 아이들의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물론 내가 무슨 수련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기쁘면 안되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기쁠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어야 한다. 근데 너무 거기에 심취해 있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건 슬플때나 좌절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감정에 빠지면 아이들이 안보인다. 그래서 나는 자주 잔잔해지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우리 집에 오게된 감자라는 아이다. 이전 집에서 짖는 문제로 밖에서 7년간 살았고 그 사연을 듣고 데리고 왔다. 근데 짖는 문제행동이 1도 없다.]


그리고 아이들을 혼을 내거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하는 것을 무척 싫어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이런 나의 화를 못내는 성향이 큰 문제를 불러오고야 말았는데... 그건 동물병원에서 간호사를 대할 때 내가 너무 온화하게만 대하다보니 간호사분 중에 한분이 통제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오늘은 잘못하면 혼을 내야지... 내말을 안들으면 화를 내야지... 아무리 다짐을 해도 이놈의 화는 좀처럼 밖으로 표출이 되질 않아 결국에는 해고라는 결과를 가지고 오고야 말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화를 내지않고 내가 해야하는 말은 그때 그때 하는 습관을 드리려고 노력중이다. 나는 원래 화를 잘 내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얼마나 화를 참는 연습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싶어 너무 놀라웠다. 생각해보니 애들하고 지낼 때 소리지르거나 혼내고 싶은 순간이 많기는 한데 어느순간부터 그럴 때 참는다는 느낌도 없이 조용히 처리하곤 했던 것 같다.     

[오른쪽에 있는 아이는 보호소에서 파보에 걸렸다가 치료되서 잠시 우리 집에 머물렀던 아이이고, 왼쪽 아이는 보호자분이 길에서 주웠다고 데리고 오셔서 그냥 우리 집에 눌러앉았다.]


며칠 전에 개한테 물린 고양이 한 마리가 병원에 내원했다. 오른쪽 뒤다리 허벅지에 큰 상처가 있었고 광주 병원에서는 뒷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며 몇 백만원의 수술비를 말씀드렸다고 했다. 보호자는 고가의 수술비도 문제지만 다리를 잘라내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건지 알고 싶어 나의 병원에 내원하게 되었다. 일단 상처부위는 상당히 좋지 않았고 이미 괴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그 부위를 소독하다 그 고양이가 보호자분이 잡고 있던 손에서 빠져나와 내 손을 할퀴었다. 금방 내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보호자분은 너무 놀라셔서 괜찮으시냐고 물으셨고 나는 흔한 일이라고 걱정마시라고 소독을 계속 이어서 했다. 소독이 끝나고 매일 소독을 하러 내원해주셔야 한다고 하고 약을 처방하고 그 뒤에야 내 손을 소독하고 밴드로 대충 수습하였다.    

 

[앞의 사진의 오른쪽 아이였던 <요미>는 며칠 전 입양을 갔다. 입양을 보내는 일은 기쁜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많이 아프다.]


진료 마감을 하고 저녁 준비를 하러 가서 엄마에게 “엄마~ 나 오늘 다쳤어~”라며 어린양이라도 부려볼 요량으로 다친 손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는 손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어머~ 고양이가 그랬니? 그 고양이는 얼마나 아팠을까?” 역시... 난 엄마를 닮아서 동물을 좋아하는게 틀림없었다. 고양이가 얼마나 아팠으면 그만하라고 나에게 경고를 했겠냐는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나는 엄마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가 별거 아닌데도 불구하고 쓰라리고 아픈데 허벅지에 엄청나게 큰 상처가 나고 곪아가는 그 아이는 대체 얼마나 아플까, 그 상처를 손대는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할까 싶었다. 그렇다고 할때마다 마취를 할 수도 없고 최대한 치료를 잘해서 빨리 회복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잘하자고 다짐했다.  

   

[예전에 10년간 키우다 알러지 생겨서 보호소에 버려진 고양이 중 하나로 이름은 <마스>이다. 우울증처럼 식사도 거부하고 움직임도 없다가 이제 애교쟁이로 돌아왔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휴일이였다. 이런 휴일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휴일에도 병원에 있는 고양이를 돌보기위해 아침 저녁으로 병원에 가야하다보니 스케줄이 하나만 있어도 휴일이 그냥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근데 오늘은 좀 알차게 보낸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다. 그리고 제일 좋은 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간 글을 못 올려서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글을 못 올려도 항상 인사드리고 싶은 제 맘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