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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Jun 04. 2024

자랑스런 나의 책

내 책 ‘사는동안 행복하게’는 작년 9월에 발매되었다. 우여곡절을 워낙 많이 겪고 발매된 책이라 기대도 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기대와 다른 책이 만들어졌고 우려 속에 책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내가 열과 성의를 다해서 책이 성공하기를 바란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책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따사로와지길 바랬다. 내가 원한건 그거 한가지였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책이 일단 많이 팔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책을 출간하고 나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내 책을 펼쳤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화장실에 잠시 갔다가 나와보니 그새를 못 참고 말썽쟁이 열무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무슨 우주인도 아니고... 혼을 내야하는데 사진만 찍고 벗겨주었다.


많은 지인들에게 선물도 하고 그랬지만 정작 나는 내 책을 펴보질 못했다. 내용이야 수십번 읽고 고쳤던 터라 모르지는 않았지만 인쇄되어있는 내 글을 차마 볼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책을 펼친 건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시절에도 노래 듣는 걸 많이 좋아했다. 너무 신나는 노래는 공부에 방해가 됐기에 좀 잔잔한 노래 위주로 들었다. 그리고 그런 노래들은 대부분 사랑 노래가 주를 이루었다. 근데 나에게는 그 사랑 노래의 주인공이 꼭 연인이 아닌 동물을 향한 애절한 사랑 노래 같았다. 너무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싶었고 그래서 노래에서 너와(나에게는 동물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열창하는 노래들이 나의 가슴을 울렸다.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의 이런 열망은 나를 열심히 공부하게 했다.

[어떤 날은 침대 위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몰리기도 한다. 이날도 커다란 만두가 기어코 침대로 올라와 애들이 서로 자리잡는다고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열무가 안보여 보니 침대 옆 켄넬 위에서 자고 있었다.]


오늘 갑자기 그 시절 노래가 생각나서 들었는데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난 동물들과 함께이고 그들에게 작든 크든 도움이 되어주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욕심이 앞섰던 나의 책이 생각났다. 아픈 손가락처럼 여기던 내 책이 갑자기 대견해졌다. 동물을 위해 살고 싶었던 10대의 내가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결국 목표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삶을 바탕으로 책까지 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난 진솔한 내 얘기를 온 정성을 다해 담아냈으니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너무 작은 공주 지디가 발레리나 옷을 입고 아장아장 다니고 있다. 요즘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너무 나와 '배사장' '배보 아저씨'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아픈 동물을 고쳐주는 수의사이자 보호소에 의료봉사를 다니는 나를 꿈꿨다. 그런 나의 꿈을 넘어 나는 30마리가 넘는 유기견을 입양해서 돌보고, 나의 병원에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며, 보호소 전담 주치의이며, 매달 보호소 봉사도 이끌어 가는 수의사가 되었다.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잊어버리고 있던 내 일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는 날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뜨거운 가슴을 안고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람보는 다리가 3개라서 살이 안찌게 하려고 항상 신경썼는데 오랜만에 사진을 찍어서 보니 몸이 너무 커져버렸다. 털이 찐거라고 애써 위로하고 있는데 내일 람보 털을 밀어줘야 겠다.


사실 지금 병원 휴가기간이다. 남들은 휴가를 보낸다고 하면 해외여행을 떠올리거나 하는 계획을 세우겠지만, 나한테는 그런 휴가를 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난 이런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 옆에서 밀린 일들을 하고 밀린 작업을 하는 시간이 그 어느때 보다 행복하다. 평소에 바빠서 챙겨주지 못했던 부분들을 챙기고 지친 나의 심신을 쉬게하는 이런 휴가가 나에게는 더 맞는 것 같다. 그 곁에 나의 아이들이 있어 그저 더 행복할 뿐이다.    

 

애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과수원으로 산책을 다닌다. 다들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행복하고 미소가 지어지는지 모른다. 이런 일상이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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