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이제 봄이라며 짧은 바지에 산뜻하게 입고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늘 춥대, 패딩 입고 나가. 꽃샘추위에 감기 걸리면 답도 없다." 엄마였다. 3월은 봄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여태껏 아침은 영하의 기온으로 시작한다. 뉴스에서는 곧 벚꽃도 핀다고 했는데 말이다. 바깥에 나가보니 아직까지 남아있는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꽁꽁 싸맨사람들뿐이다.
그날 오후, 나는 봄이 언제 올 지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올 것이 아닌가. '아직은 이미이고, 이미는 아직이다'. 언젠가 들었던 이 말이 좋았다. 온 듯, 오지 않은 듯,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뭐든지 '준비, 시작!'하고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항상 더 준비하는 자세를 갖기로 했다. 아직 겨울인 것 같다가도 이미 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미 봄 같은 지금, 가끔의 꽃샘추위가 아직의 겨울을 드러내듯이 말이다.
늘 시기상조라고 불리는 문제들이 있다. 혹은 그저 해결이 지연되는 문제들이 있다. 한때 광주형 일자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위기에 부딪혔었다. 노사공동경영문제는 유럽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이라고들 얘기한다. 최근 시작된 청년 구직 지원금은시기상조 문제를 넘어서서 불필요한 세금 낭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김용균 법에도 불구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청년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다. 아직의 겨울일 것이다. 해결되는 듯 진전되는 듯 보이다가도 뒷걸음질 쳐 한숨을 자아내는 시기가 바로 꽃샘추위다.
하지만 꽃샘추위는 곧 봄이 온다는 것을 뜻한다. 서지현 검사로 시작된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은 결국 사회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피의자들을 구속하기까지 이르렀다. 합의가 불가능해 보이던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협의점을 찾아서 착수에 들어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계절이 바뀌어나간다.
우리나라의 첫 벚꽃은 제주도에서 3월 27일에 필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 한낮기온은 17도였다. 지난 주만 해도 겨울 옷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아직인가 싶으면 이미이고, 이미인가 싶으면 아직이다. 그렇게 늘 다음 계절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올 듯 오지 않을 듯 결국은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