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la S. Chudori의 『집』 (Home)과 Linda Le의 『중상모략』 (Slander)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출신의 탈식민 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망명에 대한 성찰』 (Reflections on Exile)에서 ‘망명'을 인간이 견디기 힘든 가장 고통스런 저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망명'이란 문화적 근원과 고향을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지역주의적 미성숙아를, 타자와의 경험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 진리의 여정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망명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문화와의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생성케 할 뿐 아니라, 배타적 본질주의(essentialism)로부터 벗어나 타자를 인정하는 포용적 인식의 지평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드는 망명의 일반적인 의미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망명을 실존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추방(exile)이 당신의 원래의 고장과 완전히 단절되고, 고립되고 절망적으로 분리되는 것이라는, 통속적이지만 사실상 전적으로 잘못된 가정이 있다. 왜냐면 만일 그러한 완벽한 외과적 수술과 같은 분리가 있을 수만 있다면, 추방 이후에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 뒤에 남겨진 것 들을 생각할 수 없고, 또 전혀 회복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최소한 자포자기하는 심정의 위안이라도어떻든가질수있기때문이다 […] 추방은 어떤차원에서 보면 반쯤은 소속되고 반쯤은 격리되고 향수와 감성적인 것이 수반되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 새 거주지와 완전히 하나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역시 옛 거처와 철저하게 떼어놓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되었다.” (에드워드 W. 사이드(1996), 『권력과 지성인』, 서울, 93-94쪽; 한상희(2005),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에 나타난 망명의식에 관한 고찰」,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p. 3)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확장가능한 망명은 사이드의 말처럼, 모국인 민족-국가의 민족주의 하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따라 망명지에서 디아스포라가 가지는 감정, 삶에 대한 태도와 고향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망명은 모국을 떠나 수용국에 정착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정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망명은 끊임없는 이주와 이산, 타향살이로 상상된다. 『집』 (Home) 의 망명자들과 『중상모략』 (Slander)의 망명자들은 디아스포라 1세대에서는 모두 강제추방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강제추방 이후의 양상은 상이하다. 한곳에서는 강한 향수의 감정으로 인해 그리운 모국과 고향의 재현으로 귀결되는 한편, 다른 곳에서는 자유라는 강제추방의 새로운 의미부여로서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망명은 무엇보다 향수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야기한다. 향수란 말 그대로 과거 고향의 것에 대한, 이미 익숙한 환경에 대한, 그래서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것은 어머니이고, 미각의 경험인 음식이며, 모국어이고, 지리적인 고향과 그곳의 생활습관이다. 또한 고향의 느낌이란 무엇보다도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회상은 달콤하고 행복한 느낌을 준다. 생소한 타향은 불편하고, 고되고, 고통스럽다. 이러한 고통은 육체적인 불편함을 넘어 정신적인 고통으로 이어진다. 후자의 경우, 이미 국가의 경계 내부에서 차별과 억압을 겪으며 탈출의 수단으로서 망명을 택한 것이다. 완전히 자발적인 이주였다고는 할 수 없으나 봉쇄의 상황을 국외추방의 상황으로 전환함으로서 새로운 시도의 가능성을 획득한다. 이때의 망명은 자유를 향한 출발이자, 이방인 혹은 경계인이 독립성과 주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인도네시아의 망명은 1965년 9월 30일에 발발한 게스타푸(Gestapu: Gerakan September Tiga Puluh의 약자) 공산당 소요사건에서 시작한다. 수하르토는 군부출신으로 무력으로 사건을 진입한뒤, 수카르노를 공산당 소요의 배후 지지세력으로 지목하여 1967년에 수카르노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수하르토는 수카르노의 국가이데올로기인 빤짜실라와 강력한 국가통합, 민족주의 역사교육 등을 강화하고 발전시켰다. 수하르토의 신질서기(Orde baru)는 1998년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있기 전까지 철권통치를 펼쳤다.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수카르노의 기존정권을 밀어내고 정권을 탈취한 수하르토는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시급하였다. 따라서 내부의 적을 상정하고 그들을 철저히 배제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는 더이상 국민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국가적 배신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전국적으로 무려 50만 명 이상의 공산당 혹은 무고하게 공산당이라 몰린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동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친미정권을 연 수하르토의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혐오의 대상이 된 망명자들은 민족-국가를 정화한다는 명분하에 민족-국가의 경계내부에 남아있을 수 없었고 필연적으로 강제추방을 당하였다. 망명자들은 모국에게 버림받은 자들로서 망명을 시작하게 되었고, 망명의 기간 내내 원치 않게 떠나온 모국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어인 원제 ‘Pulang’은 ‘돌아가다/돌아오다'라는 뜻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디마스(Dimas)와 친구들(Mas Nug, Risjaf, Tjai) 네명 모두 예상치 못하게 여권이 만료되어 국적을 상실한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여권의 만료를 정체성의 상실로도 받아들인다. 처음엔 스스로를 여행자인지 난민인지, 추방자인지 정의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던 디마스는 후에 파리를 “terre d’asile” – our place of exile 즉, 추방의 장소로서 명확히 한다. 이는 후에 딸인 린땅과 아내 비비안에게 집이자 고향으로서 인식되는 파리, 관광객들에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장소로서 여겨지는 파리와 대비된다.
이들의 망명은 뿌리뽑힘의 고통이고 정체없는 부유함의 여정이다. 그래서 이들은 망명의 장소에서 그리운 고향의 재현을 시도하여 상처의 회복을 모색한다. 스베틀라나 보임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향수(nostalgia)란 “상실과 전이의 감정이지만, 자신의 판타지와 교감하는 로맨스이기도 하다.”(p. 13) 보임은 향수를 ‘삶과 역사적 격변의 리듬이 가속화된 시대의 방어기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는데, “현실의 집과 상상 속의 집을 혼동하게 만드는 게 향수의 위험이다.”(p. 16) 『집』 (Home)에서 역시 인도네시아라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복원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난다. 망명 장소에서 고향의 재현을 시도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인도네시아를 그리워하는 디마스는 파리에서 자신의 일상생활 곳곳에 자신이 집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작은 인도네시아를 만든다. 인도네시아 음식들을 만들고 인도네시아 문화를 재현한 따나 아이르(Tanah air: 인도네시아어로 조국이라는 뜻)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디마스의 집 역시 에깔라야(Ekalaya)와 비마(Bima)같은 와양꿀릿(인도네시아 전통 그림자 연극), 가면들, 바띡(인도네시아 전통 직물)으로 만든 인도네시아 지도 등을 통해 고향의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디마스에게 가장 중요한 모국과의 매개체는 거실의 큰 약통에 들은 클로브와 강황가루이다. 그는 비자가 거절당할 때마다 이 향신료의 향기를 맡으며 위안을 얻는다. 집 안을 가득채운 클로브와 강황가루의 이국적인 향기는 모국의 존재를 대신하는 상징적 기능을 한다. 향신료들의 향은 물리적 부재를 대체할 만한 역할을 한다. 신체가 없는 향은 국경이동이 자유로우며 디마스의 육체가 있는 파리와 돌아가고 싶은 인도네시아를 정신적으로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책 전체에 묘사되는 가믈란 음악, 인도네시아 음식의 맛, 클로브가 들어있어 독특한 향을 내는 인도네시아 끄레땍(Kretek)담배의 연기, 인도네시아 특산품인 루왁(luwak)커피 등은 모두 모국과의 매개체로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거실에 있던 클로브와 강황가루의 향기는 모국의 향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디마스가 인도네시아에 두고 온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 옛 연인 수르띠(Surti)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기도 하다. 226쪽에서 비비안은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수르띠가 있었다. 수르띠가 바로 클로브와 강황의 향기였다. 모든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하나였다.(Somewhere in the corner of his heart was Surti. Surti was the scent of cloves and turmeric. All were one in Indonesia.)”라고 한다. 현실적인 정착의 방법으로서 비비안을 선택한 디마스의 위선적 사랑에 대한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이때 디마스가 지금까지 파리를 집이라고 여기지 못했다는 확신을 얻기도 한다. 모국의 향기인 클로브와 강황이 곧 연인 수르띠의 향기였기 때문이다. 모국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디마스의 이성애적 사랑을 통해 발현되었다. 후에 디마스의 딸 린땅 역시 인도네시아에서 알람(Alam)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비로소 알람과 함께있는 곳, 인도네시아를 집(home)이라고 느낀다.
망명지에서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공유하는 디아스포라 구성원들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착국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대사관과의 갈등이 이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것이 된다. 모국은 언젠가 돌아가야할 곳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추방자들의 공간인 따나 아이르 레스토랑과 인도네시아 정부를 대변하는 대사관은 대비되는 공간이다. 대사관은 “체제 전복적인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신들이 정치적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레스토랑의 정치적 추방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린땅 역시 대사관 사람들은 아버지와 대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린땅의 입을 통해 대사관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카르티니의 날’ 행사는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린땅은 “그 순간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이 카르티니의 날 축하 행사는 라덴 아쟁 카르티니 또는 그녀가 편지에서 표현한 이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카르티니의 날은 사람들이 모이고 먹으려는 핑계에 불과했다. 여자들은 머리를 올리고 끄바야를 입는다. 남자들은 그들의 최고의 바틱 셔츠를 과시했다.(It was at that moment that I realized something: this Kartini Day celebration had nothing whatsoever to do with Raden Ajeng Kartini or the ideals she expressed in her letters. Kartini Day was an excuse for people to get together and eat; for women to rat their hair and put on kebaya; and for men to show off their best batik shirts.168쪽)” 라고 말한다.
또한 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린땅은 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파리의 다른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레스토랑과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깨닫는다. 그들은 따나 아이르 레스토랑 사람들은 전부 공산주의자이며 우리는 그곳에 방문하지 않아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이러한 담론은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추방자들을 전부 공산주의자라고 낙인찍고 이들을 격리시키려한 정부차원의 정책임이 드러난다. 바로 ‘bersih lingkungan’, 깨끗한 환경(clean environment), 정치적 위생(political hygiene)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대사관은 또한 외교관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공산주의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사상검증을 한다. 그러나 레스토랑을 방문하지 말라는 공식적인 지시가 있었음에도 린땅의 연인 나라의 친구들인 젊은 외교관들이 레스토랑을 방문한다. 디마스를 비롯한 정치적 추방자들에게 젊은 외교관들은 신질서기 정부의 대리인이라고 생각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1965년 이후에 태어난 새로운 새대의 일원이며 무엇을 옳다고 생각해야하는지 강요받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유를 중요시하고 세뇌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체적이며 비이성적인 논리에 좌지우지 되었던 전세대와 차별화되며 디아스포라 내부의 변화와 정치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또한 디마스 일행은 정부 주도의 역사 담론 하에서 국가의 배신자 혹은 공산당원과 그 가족들로 낙인 찍혔다. 독재자가 여전히 권력을 가지고 있고, 아무도 국가 주도의 일방적 역사 내러티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낙인 찍힌 이들은 갖은 어려움을 당할수 밖에 없다. 좋은 직업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정상적이고 활발한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파리에서 디마스와 친구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남겨진 가족들과 옛 누산따라 신문사 동료들의 가족들은 더욱 서로 의지하며 연대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디아스포라 내에서 친족체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친족체계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일상생활과 경제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중요단위이다. 특히 직계, 친인척 간의 관계와 계보가 공통의 문화적 핵심이며 국내외 사회적 관계의 기초가 된다. 때로 이들 친족 공동체의 교류는 보다 넓은 범위의 확장적 친족을 유지하기도 하며 다양한 단체활동이나 가족행사 및 모임 등을 통해 유지한다.
파리에서 디마스와 친구들이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마치 가족과 같은 중심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인도네시아에서는 디마스의 친동생인 아지(Aji)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지와 부인 레트노(Retno)부부, 그의 자녀들인 라마(Rama)와 안디니(Andini), 사형당한 옛 동료인 하난또(Hananto)의 부인 수르띠(Surti)와 그 자녀들인 끄낭아(Kenanga), 불란(bulan), 알람(Alam), 누그로호의 전부인과 그의 아들 비모(Bimo) 정도가 될 것이다. 하난또가 죽은 이후로 아지는 끄낭아, 불란, 알람 형제들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알람은 ‘삼촌’의 뜻을 알게 되기 전까지 아지가 너무 자주 찾아와서 먼 친척으로 알았으나 전혀 친족관계가 아니었다. 린땅 역시 아버지와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친구들을 삼촌, 가족인것처럼 대한다.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사회관계들의 단절을 비롯한 공통된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은 혈족은 아니지만 확장된 친족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앞에서 논의하였듯이 디마스와 수르띠는 옛 연인이다. 이들은 서로의 사랑과 미래를 약속하며 함께 자녀의 이름들을 지었는데 수르띠는 디마스가 아닌, 남편 사이의 자녀들에게 같은 이름을 붙였다. 수르띠가 아닌 비비안과의 자녀인 린땅에게 디마스 역시 같은 느낌(인도네시아식)의 이름을 주었다. 린땅은 끄낭아, 불란, 알람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마치 자신이 몰랐던 형제들의 이름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장치들이 이들의 확장된 친족관계 속에서 연대와 보살핌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실제 디마스의 친족인 아지의 아들 라마가 본인의 커리어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가족 이름인 ‘Suryo’를 버리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라마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아버지와 본인, 그리고 가족들이 열등하다고 느낀다. 정치적으로 문제만 일으킨 삼촌 때문에 본인과 가족들이 불편을 겪는다며 원망하기도 한다. 그는 국영 기업에서 일하고, 나아가 부유한 상사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위생적이지 못한’ 자신의 가족적 배경을 숨긴다. 수하르토 정권의 공산주의자에 대한 편집증이 라마에게로 전염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거짓된 정체성은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라마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결국은 삼촌을 원망하고 사회적 낙인이 찍힌 본인을 열등하다고 여겼던 라마도 1998년의 수하르토 퇴진 요구 시위에 동참한다. ‘나’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휘둘리던 라마가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라마의 사례에서 보듯이, 수하르토 하야 이후에도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인도네시아에서 전면적으로 실종되었고 이것이 망명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다른 인도네시아인들이 역사적 연관성으로 네덜란드를 선택한 것과 달리 이들이 프랑스를 최종적인 추방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프랑스가 인권의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수하르토 하 인도네시아에서 이루어졌던 인권탄압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