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는 매년 체력장을 했다. 학생들의 체력을 측정하는 목적의 행사였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운동회처럼 느껴져 날짜가 다가오면 마냥 기대가 되고 신이 났다.
종목은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단거리 달리기도 좋고, 제자리멀리뛰기도, 턱걸이도 좋았는데, 오래달리기는 좋지 않았다. 저질스러운 심폐 지구력의 소유자인 나에겐 지옥과 같은 종목이었다. 운동장을 8바퀴 돌아야 했었는데, 시작 후 10분이 지나면 선생님은 측정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10분을 넘긴 사람은 더 이상 기록을 측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선생님의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에 결승선을 통과해 본 기억은 없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 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올 때면 남들은 8분이면 완주하는 거리를 10분을 줘도 못 뛰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에게 따져 묻곤 했다.
백수가 된 후로 답답한 마음이 들 때 마다 성공한 사람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자기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방향에 대한 답을 갈구했다.
한참 영상을 보고 나면 열정이 자극되어 좋았지만, 중요한 건 나보다 다 앞서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뿐이라는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도 벌써 차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영상 속에 나와 비슷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억울했다. 왜 나는 항상 앞서가는 이의 등만 쳐다보아야 하는가. 그래도 내가 가진 게 하나쯤은 있겠지. 없다.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없다. 무엇 하나도 이룬 것이 없었다. 나는 그냥 서른 줄에 직장에서 도망 나온 사람이었다. 후회가 뒷덜미를 스치며 감싸 쥔다. 왜 버티지 못했을까, 내가 뭐가 특별하다고. 남들 다 그러고 사는데, 이런 체력으로 밖에서 뭘 하겠다고.
멀리서 측정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체육 선생님이 다가와 귀에 속삭인다. 그만해도 돼, 10분을 넘겼어. 더 측정하는 의미가 없단다.
마우스가 바빠진다. 그만해도 된다니요. 모니터를 다시 노려본다. 당장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컴퓨터 앞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아직은 조금이나마 제한시간이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시간의 바짓가랑이를 꽉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