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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달팽이러너
Jan 14. 2020
42.195 마이런
2020년에도 마라톤 / 호찌민 마라톤 (1)
언젠가 베트남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계기가 마라톤 참가일 거라곤 생각도 못해봤다
심지어 수도인 하노이도 아니고 경기도
다낭 시라는
애칭
이 붙은 관광객이 사랑하는 휴양지도 아닌 베트남 남부의 도시 호찌민, 사이공이 내 첫 베트남 여행지가 될 줄이야
신년
의 첫 마라톤은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고 여러 대회를 검색해본 끝에 1월 중 가장 가깝게 열리는 HCMC marathon/ 호찌민 마라톤으로 결정
, 바로 참가비를 지불했다
모든 시도는 비용 지불 후에 현실이 된다고
일단 참가비부터 내자
생각은 나중에 하는 평소 스타일대로 카드를 비장하게 꺼내 들었다
'자,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됐다고!'
라고 생각했는데 참가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1210000동?
동그라미가 몇 개야?
그래서 이게
얼마지
?
베트남 환율 무식자의 첫 혼란은 참가비 결제에서부터 시작되어
황급히
환율 계산기를 열어 숫자를 찍어봤다
60500원
다행히
생각보다
안
비싸다
그래
결제 하자
!
이 대회를
9월에 결제하고 1월에 뛰러 갔는데 그 사이 4단계의 결제기간을 두고 매진으로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참가비가 조금씩 높아지는 방식이었고 나는 2단계에 해당하는 요금을 지불했다
(일찍 결제할수록 참가비가 낮은 괜찮은 방식이다)
첫 베트남, 첫 호찌민 땅을 밟으러 떠나볼까
넣어뒀던 여름옷을 꺼내고 마라톤 준비물도 챙겨 짐을 꾸렸다
이른 아침 7시 30분 비행기라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새운 끝에 새벽 추위를 뚫고 공항으로 출발
환전도 마쳤고 이제 티켓을
받으면
되는 데생각 밖의
큰 문제가 생겼다
남편과 나,
우리가 탈 비행기에 좌석이 없단다
신년 초이고 방학이 시작되는 시기라 동남아행 항공편은 연일 풀 부킹 만석을
기록 중인 가운데
우리가 이용할 티켓은 좌석이 확보되지 않은
,
즉 당일 좌석이 없을 경우 탑승을 할 수 없는 제한
티켓이었고
결국
탑승 마감 시간까지 목을 빼고 기다리다 카운터가 닫힌 후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
짐을 싸들고
나섰
는데
비행기를 못타다니)
다행히 오후에 출발 편이 한 편 더 있어 6시까지 다시 나오라는 대기 예약을 걸어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았으면 하루를 시작했을
시간에
이미 눈뜨고 여섯
시간만에
공항까지
왕복했더니
피로가 한번에 훅 올라왔다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오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새벽과 똑같은 모습으로 캐리어를 끌고
저녁 무렵
집을 나섰다
설마 이번엔 가겠지
하지만
이때도
보기 좋게 물먹었다
"오늘은 좌석이 없어요 내일 다시 오세요"
좌석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또다시 짐을 끌고 공항을
나서
야 했다
이쯤 되면 상황 정리가 필요하다
먼저 예약된 현지 호텔에 전화를 걸어
오늘은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겼지만 예약 취소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렸다 (어차피 3일 치 비용은 지불이 되어있어 상관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미 어두컴컴해진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비로소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음에 대한 현타가 왔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출발하지 못하면 마라톤 참가 키트를
시간 안에 수령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굳이
호찌민에
갈 이유가 없
다
울컥한
마음에
그 길로 중국집에 가서 매운 짬뽕과 방금 튀긴 만두에 소주를
주문했다
그래도 둘이 있으니 좀 낫다고
서로
으쌰 으쌰 하며 (죄는 없지만 좀 얄미운) 항공사 욕도 좀 하고
(하나도 괜찮은 상황이
아니지만) 서로
괜찮다고
다독여도 보고 비록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지만 피로와 긴장 끝에 마신 소주의 힘으로 푹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전날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캐리어로 다시
공항으
로
향했다
집을 나서는게
벌써 세 번째다
만약 이번에도 비행기를 못 탄다면 이번 호찌민행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동네에서 달리기 한판 하고 여행 갈 돈으로 소고기나
사 먹자는 플랜 B를 마음에 품고 카운터로 가니 역시나 오늘도 어렵겠지만 일단 대기명단에 올려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으.. 토할
것 같아"
그와중에
숙취로 속이
울렁거린다
공항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남편이 사다준 커피를 마셨다
새벽의 공항은 매우 부산스럽고 커피 한잔을 사려는데도 줄을 오래 서야 한다
그리고 다들 비슷한 수면 부족과 피로 혹은 설렘이
뒤섞인 상태라
모두들 커피가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고
속이 안좋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탑승 마감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비행기를 못 타면 우리의
신년
첫 마라톤은 이렇게 끝나게 된다
마음을
비우긴
했
지만
약간의
희망에 기대며 다시 카운터로 갔다
항공사 직원이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자리는 있다,
그리고
예약된 보따리상 한 사람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
이런 변수가 있을 수 있구나
'
정기적으로 오가는 보따리상들이 많은 노선이고 그들의 사정에 따라 이렇게 없던 좌석이 생길수도 있다는 내가 몰랐던 사실에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라도 하고 싶었다
'오지 마세요! 제발 오지 마세요!!'
그리고 그 신은 내 소원을 들어줬다
<이 티켓은 너네 가져라>
우리는 끝까지 기다린 후 실제 탑승시간에 딱 맞춰 드디어 나온 티켓을 손에 쥐고
미친 듯 달려
문 닫기 직전인
호찌민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마라톤 대회에 간다 야호!!
(노쇼의 주인공 보따리상에게 찐 감사를!!)
고추장을 곁들인 기내식으로 숙취는 완전히 해소됐고 이 밥은 양이 너무 적었다
다섯 시간 만에 호찌민 떤션넛 공항에 도착했다
이야 달라 달라
나무도 다르고 공기도 소음도 다 달라
도착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아직 오전 중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해서인지 내려선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뻤다
바로 호텔로 가서 짐을 내려놓고 배번이 담겨있는 키트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시작하는 대회를 고려해 대회장과 아주 근접한 호텔을 예약했는데 정말 대회장이 룸에서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선택
이었다
키트를 수령할 장소도
역시
호텔 바로 앞
엎어지면 코 닿을 그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땀이 쉬지 않고 흘러 결국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뛰기도 전에 죽겠는데"
더웠다
일단
너무 더웠고 겨울의 나라에서 살다가 방금 도착한
우리는
호찌민의
햇빛도
적응이 안됐다
게다가
그간의 북적이는 부스 경험과 다르게 행사장에 사람도 없다
뭔가 당황스럽다
마라톤 참가 키트에는 코코넛 음료 한 캔과 배번만 달랑 들어 있을 뿐 그 흔한 홍보 팸플릿도 안 들어있다
뭘 덜 받았나 싶어 다시 확인했지만 그게 다라고 했다
뭐가 이리 간단해?
달리기 구간 중 27km를 지나면 팔찌를 줄 거고 완주 후에 피니셔 티셔츠가 나오며 메달을 주겠다고 했다
더 머물러봤자
구경거리도 없어 일단 더위를 피해 행사장에서 나가기로 했다
이 어색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두고 남편은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신나게 놀려댔다
"니는 이제 큰일 났다 (언어 순화 중/ 실제로는 ㅈ됐다고 했음)"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다
아.. 나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
.
.
키트를 챙긴 후 잠깐 동안 마라톤은 까맣게 잊고 놀러 다녔다
<
어렵게 건너왔으니 짧은 시간이라도 볼 것 많이 보고 먹을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많이 먹어보자>라는 게 이번 여행의 또 다른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열심히 놀러 다녔다
게요리와 쌀국수, 망고,
연유커피
가 끝도 없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사이 날이 저물었고 아무리 여행 목적의 절반이 관광이라 한들 다음날 새벽에 있을 마라톤을 위해 늦지 않게 호텔로 돌아갔다
그대로 잠들기는 아쉬워
사이공 맥주와
망고, 포장해온 돼지고기 구이를 먹으며
tv도
봤다
(
뭘 알아듣겠냐 싶겠지만 박항서 감독 특별 프로그램이라 몰라도 아는 느낌으로 재밌게 시청했다)
48 시간 같은 하루를 보내고 슬슬 눈이 감긴다
예상 기상시간은 새벽 두 시
세 시간 정도 취침 후 일어나야 한다
이틀간의 출국 소동 끝에 도착한 무더운 호찌민에서의 하루는 결코 짧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가 단축된 여행 일정 속 무려 다섯 시간을 마라톤에 할당했다
후회 없는 완주가 되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호텔에서 내려다 본 다음 날 마라톤이 펼쳐질 대로풍경
출발과 피니시가 저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멋지게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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