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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Oct 22. 2022

재발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

최근에 암 수술을 받고 다음 주에 항암 치료를 시작하는 엄마와 매일 대화를 주고받는다.


엄마: 전이가 안되었길 바랐는데... 혹시 나중에 재발하진 않겠지?


나: 절대 재발하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은 없어야 해!


나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지만 마냥 확신하며 편안해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파서 속상한 가장 큰 이유들 중 많은 불안을 주는 것은 혹시 몇 년 후 다시 암이 재발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내 대답에도 편안한 표정으로 변하지 않는 엄마에게 또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재발의 두려움을 가장 무서워하던 때가 있었다. 부정맥도 시술 후 재발을 생각하는 질병이다. 성공률, 재발 비율, 재발해서 재시술할 경우의 성공률, 몇 년 후 재발 확률 등이다. 그래서 시술을 결정하기 전과 시술 후에 가장 많이 들었고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질문받았던 것은

"완치된 거래? 재발률은 몇 프로래?"


다행히 내가 가진 부정맥은 시술하기는 까다로웠지만 내가 시술을 받을 당시에 시술 성공률 90-95% 였다. 그래서 3년 내에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고 5년 내에 재발하지 않으면 안정기라고 했다. 시술을 하고 나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갔다. 선생님들 모두 내 소식을 듣고 "그래 이제 고생 끝났다. 대학이고 뭐고 언제든 시험 봐서 가면 되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하며 격려를 해주시면서 시술 성공률을 물어보셨다.


나는 조금 더 인심을 후하게 써서 95%라고 대답했다. 그때 학년 주임이던 선생님의 통쾌한 한마디

"야 됐다! 5%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어! 절대 재발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나는 그 재발이라는 단어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부정맥이 있을 때와 동일하게 식단관리를 하고 술, 담배, 탄산음료, 카페인은 먹지 않고 3년을 보냈다. 3년 후에도 가끔 회식이나 모임 때 사이다와 콜라 한두 잔을 마신 것 외에는 재발에 영향을 줄만한 음식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친구들은 의사가 하지 말란 거 너처럼 안 하고 사는 사람 처음 본다며 신기해했지만 커피를 안 마시는 나에게 스무디를 권하며 고맙게도 잘 맞춰주었다.


가끔 재발을 했나 싶게 놀라는 순간이 있었다. 기외수축이 발생했을 때였다. 사람들은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심장이 잠시 박자를 놓쳐 쉼을 반박자 줄이고 뜀박질하려고 튀어 나가는 행동을 시도하려는  기분 나쁜 느낌이 연달아 나타나서 괴롭히고 도망가는 느낌이다. '1 이상 지속되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지나가면 기외수축사라진다.  시작되나 하고 놀라 하던 일을 멈추면  행동이 멈춤과 동시에 기외수축도 사라진다. 시술  2 동안은  기외수축이 나타나면 많이도 놀라고 마음이 무거웠다. 아닌 것을 알면서꿈에서는 재발해서 다시 응급실에 서 깨고 나면 꿈인걸 알고 안심하기도 했다.


엄마가 수술을 하고 난 후 나와 같이 자다가 꿈을 꾸다 놀라서 일어나셨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길래 엄마를 흔들어 깨우고 나니 꿈에서 엄마가 죽었다고 울면서 말했다. 나는 아니라고 꿈이라고 놀라지 말고 다시 자자며 엄마를 안아드렸다. 마치 예전의 나 같아서


나는 시술한 날짜를     기념했다. 시술  날에 혼자 케이크를 사 와서 생일처럼 축하했다. 자축하는 날도 있었고 일부러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약속 중간 즈음에  오늘 시술하고 재발 안 한 지   째다~! 하는 말을 흘리면 모두 박수를 쳐주는 분위기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날렸다. 해를 거듭해가면서 10년이 지났다. 10년간 느껴보는 모든 감정을 하나씩 하나씩 버리면서 담담해져 갔다. 


시술 후에 판막이 망가져서 증상이 심해지면 부정맥도 재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2014년 7월. 새로운 두려움이 생겼고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시 겪게 되면 느끼는 막막함. 걱정하는 나에게 엄마는 반지를 사주었다. 내가 매년 기념하는 시술 날짜를 반지 뒤에 새겨 넣고 매일 차고 다녔다. 일상생활 중에 가끔 기외수축이 나타나면 '판막증이 더 나빠져서 그때 말한 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가? 시작인가?' 괜히 놀라다가 이내 기외수축이었다는 것을 알고 안심한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매년 촛불 끄면서 걱정을 날려 없애버리자! 엄마 수술한 날에 내가 매년 생일파티처럼 해줄게! 반지도 사러 가자! 이번에는 내가 사줄게!"


엄마는 싫다고 말했다. 반지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가  병원 진료 끝나고 백화점에 가서 반지 사준다고 했을  내가 백화점을 통으로 사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어! 그래도 지금 반지 잘 끼고 다니고 그걸 보면 기운이 ! 사러 가자"


마지못해 대답하는 엄마를 데리고 오늘 반지를 사러 갈 예정이다. 엄마 마음에 드는 반지가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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