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헤어진다는 사실이 참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시절 옆방에 살던 진선이 언니가 이사 갈 때는 헤어짐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몇날 며칠을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했었지요. 언니는 웃으며 또 만나자 하고 돌아섰지만 언니와의 추억을 기억하는 순간순간은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앉은뱅이 둥근 밥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 앞쪽으로는 항상 가장 맛있는 반찬이 놓였고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는 절대 밥을 먹을 수 없어 침만 꼴깍꼴깍 삼켰지요. 무릎을 꿇고 밥을 먹어야 해서 조금 천천히 밥을 먹을라치면 발이 저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코끝에 침을 서너 번씩 묻혀야 했습니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 이제 다시는 발이 저릴 때까지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뻐하던 때도 있었지요.
성인이 된 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둥근 밥상이 고물로 집 앞에 버려지고 난 후 그것이 아름다운 모습이었구나 하고 느꼈을 때는 이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네모난 식탁에 앉아 각자 밥을 먹고 바쁘게 일어서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쓸쓸하고 슬퍼집니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아무도 없는 식탁에 앉아 제대로 차려지지 않은 밥상을 혼자 마주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 헤어짐이 생겼을 때도 예전처럼 몇날 며칠 울기만 하며 보내지는 않아도 될 만큼 이제는 마음이 아주 괜찮아졌습니다. 나는 그런 마음을 어른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그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고받은 사이라면 결코 그렇게 괜찮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 보이지 못한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데 잠자고 나면 먹게 되는 나이라는 숫자에 끌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 한 켠에 고이 간직해둔 따뜻한 마음을 모르는 척 방치해 둔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 동네 굴뚝 위에 사람이 올라가 있습니다. 폭설이 내리던 한 겨울에도 그 위에는 사람이 있었지요. 우리는 잠깐씩 밖에 나가 찬바람을 쐬어도 감기에 걸린다고 야단법석인데, 아주 높은 굴뚝 위라 더 추울 것이 분명한 그곳에 사람이 있었어요. 나는 알고 있는데,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또 새해를 맞았지요. 봄이 오니 참 다행입니다. 그들이 조금 덜 추울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내일이라도 내려올 수 있다면 그냥 우리처럼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밥 먹고 잠자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에게 선뜻 따뜻한 마음을 건네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 각자 등을 돌리고 애써 못 본 척, 나의 외로움을 들키지 않길 바라면서 어쩌면 우리들의 슬픔은 그렇게 일상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