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스미다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봄 Feb 10. 2022

163. 숯과 재

강원도 한 참숯 공장에서 전통 방식으로 가마에서 참숯을 구워내는 작업자들이 있습니다. 참숯을 제조하기 위해 가마에 넣는 나무의 양만해도 무려 10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나무는 외부에서 운반되면 크기를 고르게 자른 뒤 입구가 좁은 가마 안으로 옮겨 차곡차곡 쌓아 둡니다.     

나무를 꽉 채운 뒤에는 작은 숨구멍만 남긴 채 모든 입구를 막고 불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공기가 많이 유입되면 나무가 활활 타버려서 재가 될 수 없으니 작은 숨구멍으로만 공기가 유입되게 하는 것이지요.     

나무는 봉합된 가마 안에서 5일 동안 천천히 불에 탑니다. 입구를 막았으니 그 안에서 얼마나 태워졌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다만 작은 숨구멍으로 유입된 공기의 양만큼 천천히 타서 훌륭한 숯이 되리라는 믿음만 있을 뿐입니다.     

그 5일 동안 작업자는 숯가마 앞에서 불을 지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안에서 좋은 숯들이 탄생하길 기다리는 과정은 길고 지루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오로지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와 작은 숨구멍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니까요.     

그렇게 5일이 지나고 나면 작업자는 1200℃가 넘는 참숯 가마의 입구를 열고 그 안에서 숯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뜨거운 열기와 싸워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지만 작업자들은 그 안에서 5일 동안 보지 못했던 숯들과 마주하면서 보람을 얻습니다.     

어떤 것은 잘게 부스러진 채 밖으로 나오고 어떤 것은 가루가 되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간혹 원형의 나무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나오는 것들은 장식용으로도 팔려갈 수 있으니 가격도 두 배, 기쁨도 두 배입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원형의 상태로 숯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10톤의 나무를 태우면 숯이 되는 것은 고작 1톤 미만이지만 그 1톤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결실입니다.      

나무들은 불이 조금만 세도, 공기가 조금만 더 투입돼도,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도 모두 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작업자들은 좋은 숯을 만들기 위해 그 안을 볼 수 없음에도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며 불 앞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만 작은 숨구멍을 통해 끊임없이 공기가 투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밖에서 모든 악조건을 차단하며 지키고 있으니 훌륭한 결실을 맺을 거라는 믿음만은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똑같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그것이 재가 되기도 하고 숯이 되기도 하는 것은 오로지 어떤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아버린다면 그것들은 모두 한 줌의 재로 변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얻고자 하는 성과들도 참숯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그것이 완성되기까지 고난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혹은 그것을 견디는 시간이 힘들다고 외면하다보면 그것들은 모두 재가 되어버리고 결국 성과를 확인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니까요.      

이전 09화 191. 건축물의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