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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스미다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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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191. 건축물의 힘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의(衣) 식(食) 주(住)’입니다. 연약한 동물이니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옷이 있어야 할 것이고, 먹어야 살 수 있으니 음식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명제는 너무도 명확해서 그 뜻을 왜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있는 ‘주(住)’는 아직도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다’라는 뜻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살다’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디서’ 살 것인지, 또는 ‘어떻게’ 살 것인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만일 ‘어디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건축물, 즉 집이나 공간을 의미할 것이고, ‘어떻게’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住)’라는 말에는 위의 두 가지 뜻이 모두 담겨있는 셈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건축과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떤 학자는 건축이 먼저 시작되면서 정착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농사를 짓고 문명이 생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역사학자가 아니니 그 부분을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만 분명한 것은 건축은 인간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건축물의 사전적 정의는 콘크리트나 철근, 유리 등으로 지어지는 물질 덩어리를 뜻하지만 그것만으로 건축물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양옥인지, 한옥인지, 바닷가에 있는 집인지, 숲 속에 있는 집인지 그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집과 사람과의 관계, 집과 주변 풍경이나 환경과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서’와 ‘어떻게’를 모두 고려한 집이며 그것들이 모두 고려되어야만 비로소 집이 갖는 의미를 모두 생각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건축물들은 이러한 것들이 무시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저 뼈대와 형태만 갖춘 건축물만 들어서고 있고 그 속에 ‘어디서’와 ‘어떻게’ 등 관계에 대한 부분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아파트만 보더라도 그러한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람은 있으나 사람과 어우러지는 자연은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기 어렵고, 장애인의 경우에는 출입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집은 있으되 그 속에서의 관계는 생략되어 있는 셈이지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는 여전히 높은 담에 둘러싸여 획일적인 급식과 일과시간이 정해진 교도소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잃어갑니다. 아파트 숲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는 서로의 왕래를 막은 채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근 채 소통하지 않은지 오래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고립되어 고독한 생을 살아갑니다.     

건축물은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도시에도 단순히 콘크리트로 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품고, 사람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그 안에서 꿈을 키우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고,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는 그런 건축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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