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동경한 적이 있습니다.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배경으로 하늘을 멋지게 비행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보였던지, 내게도 날개가 있다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날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하늘을 보곤 했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얼마나 많이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조금 성장한 이후입니다. 붉은가슴도요새는 무려 2만 9000㎞가 넘는 거리를 날아서 여행한다는데 그 먼 거리를 여행하려면 몇 번의 날갯짓을 해야 할까, 여행하다가 얼마나 많은 천적들과 만나게 될까 생각한 것도 그때입니다. 어른이 된 후에 본 새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동경했던 새와 달리,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존재의 눈물겨운 모습이었습니다.
나와 떨어져서 보게 되는 것들은 대개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도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새들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지는 반면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새들도 있으니까요.
날개를 가졌다고 해서 모든 새들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구상에는 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새들은 40여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날지 못하는 새들은 주로 천적이 없는 섬에 살다가 나는 능력을 잃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타조나 펭귄도 그중 하나입니다.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키위새는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우리가 즐겨먹는 과일 키위도 웅크린 모습이 키위새와 비슷해서 ‘키위’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억만 년 전 뉴질랜드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는 평화로운 무인도였습니다. 새들에게는 천적이 없었고 먹이가 풍부해서 굳이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다닐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변했습니다. 함께 이주해온 포유류들은 순식간에 토착새들을 멸종위기로 내몰았고 타조와 비슷한 모아새는 주로 마오리족의 저녁식사거리로 희생되어 멸종했습니다. 날개가 퇴화되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키위새는 살아남기는 했으나 낮에는 은신하고 있다가 밤에만 나와서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현재의 삶과 타협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하다는 것이 당시는 행복한 일이었으나 결국 그들을 전혀 다른 처지에 놓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지요. 만일 그 섬에 키위새의 천적이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하늘을 마음껏 비행하는 키위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천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천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경제적인 궁핍이나 어려운 환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적이 있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천적이 없다면 우리는 생활에 안주하면서 세상을 헤치고 나아갈 능력을 상실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만일 현재 내가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천적이 나를 성장시켰구나 생각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날개가 퇴화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서서히 조금씩 날다가 어느 순간엔 튼튼해진 날개를 활짝 펴고 두려움 없이 바다를 건널 수 있을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