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새해 첫 기적

by 임봄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반칠환 ‘새해 첫 기적’ -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가 지나고 또 다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각자 살아온 방식이나 감당해야 할 몫들은 달랐지만 우리는 오늘 또 이렇게 새해의 시작 앞에 서 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뛰어가는 말도, 느릿느릿 거북이에게도 평등한 새해, 기어가거나 굴러서 가는 생명에게도, 움직일 수 없는 바위에게도 새해는 평등하게 주어집니다. 무릇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앞에 기적처럼 다가온 새로운 시작, 그것은 바로 새해 첫 아침입니다.

바다 위로 붉은 빛들이 휘감기고 태양이 솟아오르자 함께 선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서로에게 환한 미소로 덕담을 나눕니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기쁜 마음을 가득 담아 건네는 그 말들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엄마와 딸이, 남편과 아내가, 어르신과 가족들이,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인 풍경은 붉게 떠오르는 태양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새해의 첫 태양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더 맞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만큼은 태양이 주는 경이로움으로 또 한 번 새해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지나간 날들은 슬펐습니다. 생활고에 허덕이던 사람들, 학대를 당하던 사람들,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 계획하던 것들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바라고 꿈꾸던 것들은 우리를 조롱하듯 손에서 미끄러져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지난날들은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새 생명이 탄생했고, 여전히 새로운 노래가 불리어졌고,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로 인해 세상이 하나 둘 아름답게 바뀌었으니까요.

새해 첫 아침은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시 탄생하는 눈부신 기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어 맞을 수 있는 경이로움…, 여행을 가던 도중 잠시 간이역에 내려 만난 화사한 꽃처럼 새해의 첫 아침은 우리에게 다시 힘차게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는 힘을 전해줍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또 한 번의 새해를 맞고 또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의 시작을 열어갑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가장 좋은 날들을 맞을 수 있는 거름이 되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태양의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새들의 가냘픈 날개와,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움츠린 꽃 몽우리와, 어린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개와, 밤새 잡은 생선을 싣고 항구로 들어오는 고단한 어부와, 흰 머리카락에서 전해지는 당신의 힘겨운 삶에도 오늘은 새해의 첫 아침이 전하는 기적과 사랑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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