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을 걸을 땐/ 발끝으로 걸어도/ 뒤꿈치로 걸어도/ 풀꽃에게 미안해// 풀밭을 걸을 땐/ 내 발이/ 아기 새 발이면/ 참 좋겠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습관 하나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힘들 때면 동시를 소리 내서 읊는 습관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평택시 공무원이 아들의 동시 낭송 영상을 SNS에 올린 것을 보며 외운 것인데 그때부터 이 시를 읊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갈해지면서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풀밭, 그 풀밭을 걸으며 발에 밟히는 풀꽃에게 미안한 마음, 그래서 꼭 걸어야 한다면 내 발이 큰 새도 아닌 작고 여린 아기 새의 발이었으면 좋겠다는 그 순한 마음을 생각하면 힘들었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지고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약육강식’이니 ‘적자생존’이니 하는 말들에 익숙해진 어른들에게는 철없는 이야기쯤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가는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이런 여리고 순한 마음들을 조금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도 가져봅니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업무에 치이고 힘들어지는 날,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 나로 인해 필시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을 그날, 어김없이 저녁이 되면 이 시를 소리 내서 읊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밤새 아프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치유하는 일임을 알기에 동시가 주는 따뜻하고 순한 언어들을 한자 한자 새겨 봅니다.
동요에도 동시와 비슷한 치유의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단위로 열리는 ‘노을동요제’ 준비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평택에서 탄생한 국민동요 ‘노을’처럼 모두에게 사랑받는 동요가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아름다운 가사에 아름다운 곡이 붙여진 창작동요를 많이 들을 수 있어 행복을 느끼는 일이 많으니 일이 많긴 해도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대회에 출품된 창작동요 중에는 마음에 꼭 와 닿는 노래도 많은데 이상한 건 노래를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른 네 명이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이 넘도록 동요만 부르고 나온 일이 있는데, 그중 한 분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치유된다며 환하게 웃곤 합니다. 모르긴 해도 당시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서 낭송하는 것이 훨씬 치유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요는 그런 기능에 딱 맞는 장르니까요.
동시와 동요는 반드시 어린이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때로는 어른들을 위한 특별한 힘을 갖는 것이 바로 동시와 동요가 아닐까…, 어른이 되면서 잃어가는 마음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어떤 힘, 어른이 되면서 자꾸 껴입게 되는 어떤 단단한 마음들을 잠시 내려놓게 하는 힘,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며 ‘풀밭을 걸을 땐’ 이라는 동시 한 소절을 가만히 읊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