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인가, 어린 시절 잠시 살았던 바닷가 한 시골마을 초등학교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사십여 년 만에 찾은 학교 앞 문구점은 이미 예전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낡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흑백사진처럼 변해버린 그곳에서 나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옛 추억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교실 옆 벤치에 앉아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하던 기억도 떠올리고, 바람 좋은 어느 날 소나무에 기대 앉아 친구들과 숙제하던 일도 떠올렸습니다. 그곳에는 종종 나무에서 떨어진 송충이 때문에 아이들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오후의 적막을 깨트리곤 했었는데 키가 훌쩍 커버린 소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학교 정문을 나와 삼 분만 걸으면 만나게 되는 바닷가…, 입구에 세워진 하얀 비너스 동상은 오래 전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해수욕장의 상징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거의 벗은 모습으로 우뚝 선 비너스를 맴돌며 키득거리기도 했고 그 옆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팬티 바람에 우르르 물속으로 들어가 첨벙거리던 친구들은 젖은 속옷 위에 그대로 겉옷을 걸쳐 입고 맨발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곳은 바로 옆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해수욕장이 생기면서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었지만 아직도 하얀 비너스 동상만은 그 자리에 남아 이곳이 내 기억 속에 있던 그곳임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매일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다보면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삶이라는 무게로 억누르면서 마음 한구석에 그저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그리움이지요. 그 억눌린 것들이 비집고 올라오는 것을 도저히 막을 힘이 없어질 때, 그때 우리는 추억여행을 떠납니다. 먼지 앉은 옛 앨범을 뒤져보거나, 어린 시절 친구들을 떠올리거나, 혹은 그때의 나처럼 잊고 지내던 옛 고향을 찾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앨범 속에서만 보던 것들이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호화로운 건물들 사이에서 아직도 옛 자태를 지키고 있는 낡은 건물을 만날 때면 왠지 세상에 부대끼면서도 잘 견디고 있는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아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비록 나는 떠났어도 아직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를 만날 때나, 아니면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일상을 평온하게 지내시는 동네 분들을 만날 때 감동은 배가 되고 왠지 모를 고마움과 포근함에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만일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다면 지친 우리에겐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안식처가 되겠지요.
모든 것들이 고향을 잃고 떠도는 요즘의 세태를 식자들은 유목민, 혹은 노마디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한곳에 정주하고 싶은 것이 타고난 본성인지 세상에 휩쓸려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다니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것들이 그립습니다. 아직도 학교 앞 문구점을 지키고 계시는 아주머니, 아직도 동네 한 귀퉁이에서 구두수선을 하는 아저씨, 마을은 변해도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어주는 동네 느티나무만 보아도 반가움에 눈물이 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