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존재하는가 & 그들의 생명은 빼앗는 일은 옳은가
'살인'(殺人)은 보편적으로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중 가장 죄질이 큰 범죄로 분류된다. 당연히 대한민국 역시 형법 제250조(살인, 존속살해)를 통해 살인의 죄를 엄중하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 제도'는 어떠할까.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빼앗는 행위. 이에 대한 논의는 오래도록 존재해 왔으며, 현재 국가별 시행 여부는 제각각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법률상 '사형'이 존재하지만,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한 적 없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에 속해있다. 그런데 최근 '흉기 난동', '묻지마 살인' 등과 같이 각종 흉악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형'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세상에는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의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 모두의 안위를 위한 도덕적으로 더 올바른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여전히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악질범들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하고, 실제로 사형을 집행한다'. 이 파격적인 문장은 현재 방영 중인 SBS 목요드라마 '국민사형투표'의 로그라인이다. 앞서 드라마 '모범택시' 시리즈처럼 법망을 피해 가는 악인들을 향한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작품 등이 연달아 선보이며 대중의 크나큰 호응을 얻었던 터. '국민사형투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선택으로 악인을 '심판'하는 것에 동참하게 한 모양새다. 물론, 이는 전술했던 현재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적잖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극 중 권석주(박성웅)는 자신의 8살짜리 딸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고 죽게 한 피의자가 결국 무죄로 풀려나자 직접 그를 찾아가 살해한다. 그리고 살인죄로 법정에 선 그는 자신의 최후 변론을 통해 "무죄의 악마들이 여전히 이 나라에 존재한다는 게 정말 화가 난다"라고 오히려 분노한다.
무죄의 악마들이 여전히 이 나라에 존재한다는 게 정말 화가 난다
이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의문의 추종자 '개탈'이 등장하고, '무죄의 악마들'을 투표 결과에 따라 공개 처형한다. 대중들은 여기에 공감하거나 동조하는 양상을 내비치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작중 주인공에 해당하는 김무찬(박해진)과 주현(임지연)은 모두 경찰로, '개탈'의 이런 행위 역시 분명한 '살인'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라고 강조하며 그를 체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주요한 스토리다.
어쩌면 '국민사형투표'를 안방 1열에서 보게 된 시청자는, 고민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러한 일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다면, 우리는 '개탈'을 비난하게 될까 아니면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쪽일까? 현 분위기에서 뉴스 사회면 메인을 장식하는 흉악범들에 대한 '국민사형투표'가 실시된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미 온라인 여론이 댓글 등을 통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민사형투표'와 같이 악인을 처단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로 발현되어 왔다. 과거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선보이며 국내에까지 큰 인기를 얻었던 만화 '데스노트' 역시 이러한 형태를 지닌 대표작 중 하나다. 사신(死神)이 인간을 죽일 때 사용하는 공책 '데스노트'를 우연히 습득하게 된 주인공 라이토가 이를 통해 온 세계의 범죄자들을 죽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중후반부로 갈수록 '국민사형투표'와 유사한 고찰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이는 영화 등의 영상물로도 만들어졌으며, 현재도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 오래 사랑받고 있다.
지극히 만화적 발상이 역력한 '국민사형투표' 역시 '데스노트'와 유사하게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는 최근 잇따라 대중적 호응을 얻고 있는 디즈니+ 시리즈 '무빙',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과 마찬가지다. 또한 '국민사형투표'는 드라마 '더 글로리'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연달아 연기 호평을 받으며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배우 임지연의 차기작인 것으로 공개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국민사형투표'에 쏠릴 수 있는 요소들이 풍성하다는 이야기다.
총 12부작의 '국민사형투표'는 지상파임에도 불구하고 주 1회 방영이라는 편성을 택한 부분은 다소 감질이 나지만, 꾸준히 4% 안팎의 시청률을 거머쥐며 짐짓 안정세를 탄 분위기다. 시청자는 여러 고민을 품게 될 것이다. '죽어도 마땅한 사람'을 판가름하는 인간은, 객관적으로 완전무결할까. 그들의 선택에는 한치의 실수나 오차도 없는 것은 확실할까. 혹시라도 발생하는 '무고한 희생자'가 존재하진 않을까- 하는 류의 생각의 맞물림.
대중문화 콘텐츠는 단순히 재미와 자극만 좇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국민사형투표'가 이러한 몫을 해낼 수 있을지 더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