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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주작은행성 Mar 07. 2024

죽여마땅한 사람들 리뷰

죽음의 숨결

김영하는 소설은 감정의 테마파크라고 말했다. 천 명이 한 소설을 읽으면 천 개의 감상이 나오는 게 정상이고 사람마다 소설에 대한 감상이 다른 것도 정상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독자는 감정의 테마파크인 소설을 통하여 다양한 코스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 뒤 나가면 된다고 말하였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주인공 릴리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의 집합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다른 감정의 테마파크를 느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내가 겪었던 감정은 죽음과 시신에 관한 감정,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감정이었다.


때는 2014년 5월 4일.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제 케이크 집에서 마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온몸이 저렸다. 몸은 급격하게 피로해졌고 머리는 쪼개질 듯 지끈거렸다. 결국, 2시간 먼저 조퇴를 하고 집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아버지가 찾아와 ‘오늘 엄마 집에 갈 건데 같이 갈래?’라고 물으셨다.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피곤하니 혼자 다녀오시라 말했다. 아버지는 내게 다시 한번 집에 가자고 권유하셨고, 난 피곤함에 ‘됐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지친 목소리로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고 말씀하시고 어머니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그 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그 날은 아버지께서 작은아버지를 불러 두 가족이 모인 날이었는데, 아버지는 전날 떠나려고 하는 작은 아버지를 하룻밤 더 붙잡았다. 다음날,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우울하여 붉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염색이 끝나자마자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받자 어머니는 울고 계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택시를 잡아 기지시에 위치한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갔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나는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내가 죽은 남자를 태운 채 한밤중에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애썼다. 라디오를 크게 틀었어도 방귀 소리는 두 번이나 더 들렸고, 운전석에는 오줌과 대변 냄새가 진동했다. 어릴 때 죽였던 검은 길고양이가 생각났다. 녀석이 죽으면서 똥을 싸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던지.
-죽여 마땅한 사람들 中-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하얀 천으로 덮인 아버지와 마주했다. 아버지는 겉보기에 잠을 주무시고 계신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팔을 잡아 올렸다. 아직 따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팔을 놓친 순간,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평소에 아버지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의 팔을 들었다 내리는 행동을 많이 했었는데, 죽은 아버지의 팔은 잠든 아버지의 팔보다 훨씬 빨리, 강하게 떨어졌다. 내려간 팔의 반동으로 팔꿈치가 들릴 만큼 빠르게 내려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배가 움직였다. 나는 다급하게 의사 선생님께 아버지의 배가 움직인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의사는 죽은 시신에서 흔히 보이는 증상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허망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아버지의 사망을 확인한 후 어머니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장의사가 장례식을 준비할 식사 명수와 비용, 그리고 영정 사진에 사용할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무렵의 정장 사진을 합성하여 영정사진을 만들고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 모든 게 단 두 시간 만에 일어났다.


가슴이 아팠다. 익숙한 감정은 아니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난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죽여 마땅한 사람들 中-


다음 날 아버지의 시신을 입관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시신과 다시 마주하였다. 하루 전에 봤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고, 혈관은 검붉게 변해 있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러한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이 무서웠다. 이윽고 입관이 진행되었다. 장의사는 아버지의 몸에 대렴포를 감았고, 나는 장의사를 돕기 위해 아버지 머리 위에 섰다.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내 몸을 휘감았다. 분명 아버지는 숨을 쉬지 않고 계신 상태이신데, 약간 벌어진 입 사이로 죽음의 숨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저 숨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나도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었다.


아버지의 온몸에 대렴포가 감아지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대렴포을 감을 차례가 왔다. 장의사는 내게 아버지의 머리를 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가웠다. 돌보다 단단하고, 얼음보다 차가웠다.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그런데 한편으로 만약 아버지가 이 상태로 깨어나신다면 난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에 기뻐할까, 이렇게 무서운 몰골이신 아버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 죄스러웠다. 아버지의 얼굴에 대렴포가 감겼다. 아버지의 얼굴이 하얀 천으로 감긴 후에야 비로소 슬픔이 터져 나왔다. 대렴포에 감긴 아버지 몸 위로 하얀 종이가 꽂히고, 아버지는 하얀 꽃봉오리와 같은 형태가 되셨다. 그리고 관 뚜껑이 닫혔다. 내 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아버지 모습을 나는 무서워했다.

아버지의 입관을 진행하면서 슬픔보다 공포와 두려움, 무서움의 감정이 더 컸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순간에 느낀 복잡한 감정을 나누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족과도 공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외로웠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으며 위의 두 문장만으로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좋았다. 위의 두 문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을 상기시켰고 그때의 감정을 불러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 한가운데 남은 죄스러움과 가슴 어딘가의 남아 떠나보내지 못했던 감정과 다시 마주하였다. 아버지와의 이별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란 책이 좋았다.

시간에는 상처를 치유하는 기억의 망각이 있고, 글에는 생을 재생시키는 상처의 소멸이 있다. 마음속 작은 구멍이 메워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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