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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주작은행성 Mar 05. 2024

문보영 책기둥 리뷰

시작은 나, 끝은 당신

1.만남의 시작을 아는 썸머와 만남의 끝을 아는 톰의 이야기

영화 500일의 썸머는 영화 시작부터 이 이야기는 사랑이야기가 아닌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라고 선언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가 막 시작한 때 혹은 영화 1회차 때는 이 ‘만나는’ 이라는 단어 한마디가 주는 영향력을 느끼기에는 힘들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는 왜 단언을 하고 시작했는지를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이 썸머라는 사람과 톰이라는 사람이 사랑을 해서 이랬네 저랬네 보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쌓이는 에피소드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사랑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두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고 그것 뿐이라고 말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문보영 시인은 시인의 말부터 콘페니우르겐이야기를 하며 아이러니와 수수께끼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난 후 첫 시부터 오리털파카신에 대해 시인은 쓴다/썻다 라고 선언하며 시집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문보영 시인의 시 속 시인/시인의 모습을 한 화자 및 신들은 이야기의 시작점을 알고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시작을 알고 있어 화자를 안내하게 되는데 의아한 점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이 이야기를 결말로 이끌어가긴 하나 정작 이야기의 결말을 알거나/ 마무리 하는 것은 시속 화자가 결말을 마무리 짓는다는 점이다. 시작과 안내만을 하는 이들은 돼지가 죽었는데 죽어서도 몸이 줄지 않는 것에 관해서만 쓰거나, 화자에게 말을 전하거나/지문으로 마무리되는 나래이션으로 끝이 난다. 문보영의 시에서 시인의 인격인 앙뚜안, 지말, 스트라인스도 결말에는 위 3명의 시인의 인격을 비추는 것이 아닌 한 날의 묘사로 마무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이야기의 결말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그 자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하게 해야 하며, 기계장치와 같은 수단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한 것을 의식하기라도 한 것 같다.

이와 반대로 화자들은 대부분 시작점을 모른다 모든 책이 1권이 없거나, 입장부터 받아야할 빵을 받지 못하거나, 이름없이 Z나 N A,B,C의 인물이 되어 사진을 찍거나, 출구에 모이거나, 귀가 땅바닥에 떨어지거나. 그러나 이들은 시의 결말과 함께한다. 다같이 모여 나란히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 흔들의자에 앉는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를 한 줄의 묘사와 함께 등장한 이들은 씬스틸러로서 각자의 배역을 수행하고 연기한다. 시 속 규칙이나 절대적인 설정보다는 화자의 개성과 스토리로 시를 이끌어나간다.

2. 허구가 진실을 품는 만우절의 불편한 진실

시인은 거짓말을 해도 합법적으로 용서되는 만우절 날의 학생처럼 거짓말을 신나게 늘어놓는다. 그러나 만들어진 거짓말에도 어느정도의 진심과 진실은 품어져 있다. 만우절 날 행해지는 고백들은 대부분 진심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에서 고백에서 차인 거짓말쟁이들은 만우절 장난이었다고 끝까지 거짓말하며 거짓말을 진실로 만든다. 너무 슬픈 이야기이지만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에 가장 진심을 보이는 거짓말쟁이들은 순수 진실을 거짓말처럼 말하 진실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끝까지 거짓말을 하여 결국 만우절의 거짓말을 진실로 만든다. 문보영 시인의 글은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진실이 담겨져 있다. 사진을 찍는데 허리를 숙여서 얼굴이 가장 크게 나온다든지, 친구가 출구를 잘못 말해도 친구를 모두 잘 알아 같은 출구에 모이고, 책을 배불리 먹은 도서관은 덩치가 커지고, 도서관 사서가 매번 같은 색 와이셔츠를 입어 날짜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화자들의 정체성이 명확하며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성격대로 행동한다. 이야기가 허구일 뿐 화자는 일관된 정체성을 가지고 진실을 말한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매력적이고 잘 드러나는 시라는 점이 우리가 문보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웃는 이유이자 불편한 감정이 싹트는 이유다.

3. 수학선생님 김행숙, 국어선생님 문보영

문보영 시인의 시 중에는 법칙을 상정하거나, 의문을 가지거나, 공식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 시들이 상당부분 배치되어 있다. 사물에 관한 법칙/묘사를 나열한 벽, 모자, 못, 도끼를 든 엉덩이가 미친 사람. 법칙과 함수, 과학 상식들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삼각형, 과학의 법칙, 수학의 법칙, abc, 뇌와 나. 독특한 상황 속 법칙에 의문을 가지는 무단횡단은 왜 필요한가, 포크는 방울토마토를 찍기에 알맞은 도구인가, 진짜 눈물을 흘리는 진짜 당근, 프로타주 등 기존의 법칙에 관해 주관적인 상상을 덧대여 사물의 스토리를 만들고 공식처럼 짜여진 기호조각/문장을 지문의 형태로 바꿔 극화된 이야기를 전달한다.

김행숙 시인이 시 속 정보를 수학처럼 공식화하고 그 공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공식 또는 기출/응용 문제를 통해 객관식의 질문을 하여 우리에게 답이 무엇일지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알려준다면 문보영 시인은 시 속 정보를 매력적인 화자와 독특한 스토리를 지문화하고 주어진 지문 안에 소설, 책, 인용구 등을 통해 변형되는 기출/응용 문제를 통해 독자의 주관적인 성향과 답을 내놓게 한다. 전자의 방식이 풀이 방식과 도식화된 유형을 따라가며 나와는 다른 그림을 찾는 매력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화자와 스토리 속에 숨은 그림을 찾는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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