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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주작은행성 Mar 09. 2024

재생력이 필요할 때

통근 기차의 루프는 계속 돈다

통근 기차 - 손미

승객 여러분 뼈를 깨끗이 씻고 탑승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등을 보며 육류비빔밥을 먹을 것입니다

길이 없지만 출발해야 합니다


누군가 기차를 잡고 앞으로 밉니다

우리는 출발합니다

살러 갑니다

내 머리를 잡고 꿈틀거리지 좀 마세요


숨을 참으면 연해질 수 있습니다

더욱 부드러워질 때까지

핏물이 빠질 때까지

썰기 좋은 고기가 될 때까

우리는 매일 출발하고 있습니다


기내식은 육류비빔밥

우리는 출발합니다

제발 움직이지 마세요

너무 무섭습니다

------------

이 시는 유계영 시인과 김승일 시인, 문보영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서늘한 단어들과 무감각한 어투, 프로세스처럼 진행되는 예고의 상황들


숨을 참으면 연해질 수 있습니다. 더욱 부드러워질 때까지 핏물이 빠질 때까지 썰기 좋은 고기가 될 때까지 한끼의 밥이 되기 위해 어쩌면 죽음의 이미지와 어떠한 것을 참으며 사물의 속성이 변화하고 수동적으로 변하게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죽음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줍니다.


등을 보며 육류비빔밥을 먹는다는 것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 시골의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으려고하는데

모두가 죽기를 바라고 있는데

그속에서 누군가 살기를 희망하여 몸부림친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희망을 발견하면 살고 싶어지니까

믿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지니까

움직인다면 살아있는 것일 겁니다.

그렇지만 기차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누군가 기차를 잡고 앞으로 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 내 머리를 잡고 꿈틀되고 있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겁니까

한 끼의 밥이 되기 위해 우리는 매일 출발하고

살러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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