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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Jul 17. 2023

낯선 글자에 휩싸인 여행


영어권이나 라틴어계의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는 여행지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눈에 들어오는 표시들보며 내가 여행객을 실감하게 한다. 내가 아주 낯선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글자로도 보이지도 않는 어떤 상징으로 보이는 것들. 이것들을 보는 순간, 여행이 주는 압박을 느낀다. 여행지의 낯선 문자로부터 여행의 긴장은 시작된다. 공항에서 마주치는 안내판은 다행이다. 대부분 공항의 안내판은 영어와 병기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와 함께 문자가 있는 경우도 낯선 문자가 주는 긴장 해소에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낯선 문자로만 덮혀 있는 도심으로 들어왔을 때, 공항에서 가졌던 안도감은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긴장으로 바뀐다. 읽어 내리지 못하는 언어는 뭉뚱그려진 추상화로 보인다. 그 추상화는 끊임없이 나를 부른다. 자신을 읽으라고. 그 추상화 뒤에 숨겨진 대상과 의미를 찾으라고. 그런 그림들이 계속 이어진다. 나의 여행 일정에 따라붙는다.


읽혀지지 않는 글자는 어둠이다. 그 어둠을 깨뜨려야 한다는 초조감, 강박을 던진다. 그러면 글자는 더욱 권위를 갖는다. 그러나 글자가 읽혀지지 않을 때, 무시당했을 때 글자들은 외로워진다. 추상화적 호기심도 갖지 못한 그저 어두운 색깔로 덮힌 도화지이다. 도화지 안에 많은 색은 제 빛을 내지 못한다. 글자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힘든 상황은 곧 여행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여 상징이 된다.


대화도 마찬가지이다. 못 알아듣는 외국어의 경우 종종 경고음으로 울린다. 경고를 알아들기 위해서 몸의 감각이 반응한다. 뇌가 빠르게 움직인다. 경고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만큼 당혹감은 더 증폭된다. 그런데 경고음이 아니라 그저 소음일 뿐이라고 인식할 때 긴장감에서 벗어난다. 짜증스럽지만 무시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편안하지는 않으나 여행의 지속성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영어권이 아닌 나라, 영어라는 문자와 대화가 불가능한 곳에서는 거의 동물적 수준의 소통만이 남는다.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을 때, 서로 언어를 고집하지 않을 때 둘은 일회적 관계가 되어 버린다. 이미지만으로 소통을 한다. 깊은 소통, 넓은 소통을 포기하면 압박도 생기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소통거리와 수단만 생겨도 고맙다. 식당에 가도 그림 메뉴, 말이 섞일 필요가 없는 정가 표시가 있는 마켓을 이용한다. 결국 현지인은 물건 뒤에 숨고 여행자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여행은 점점 사람과의 접촉의 필요성이 점점 적어진다. 여행지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관계는 상품을 매개로 한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뿐이다. 먹고, 보고, 체험하는 것이 이런 과정을 거친다. 내가 먹고, 보고, 체험한 것이 여행지의 지역성, 현실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상표와 가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여행은 선경험자의 여행정보에 따라 진행된다. 여행가이드 책, 웹 등이 넘쳐난다. 여행은 선경험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의존 정도가 지나쳐 그런 정보를 복사하는 여행이 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선경험이 실제 경험인지, 현지에서 어떤 소통에 기반한 것인지를 모른다.  어쩌면 최근의 여행경향은 증강현실게임과 같다. 선험자가 설정해놓은 게임 규칙, 캐릭터들을 가지고 게임하는 것과 같다. 그 정보를 얼마나 소화하느냐에 따라 내 여행 레벨이 결정된다.


현지 가이드가 동행하는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가이드가 인도하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더라도 자유여행 중에도 어는 일정은 가이드와 함께 종종 여행한다. 그러면 여행의 질과 양은 가이드에 의해서 결정된다. 가이드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진다. 여행자는 일상에서 갖기 힘든 신뢰를 가이드에게 보낸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공통의 소통도구를 갖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한편의 언어가 요구될 때 그 때 언어는 오히려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장벽이 되어버린다. 장벽을 무시하고 진행되는 여행은 전적으로 친숙한 언어의 여행자가 만들어놓은 틀에 맞추어 진행된다. 어떤 일이나 온전한 자기 경험으로 이루어지고, 처음 경험으로 명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힘들다. 우리가 모험가, 탐험가가 아닌 이상 그렇다. 결국 여행의 목적에 따라 여행자의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여행이 어떤 정보에 기반하고 있는지, 어떤 소통매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여행에 대한 심오한 생각들이 많겠지만 나는 여행 목적 중 하나는 다양성에 대한 몸의 감각을 넓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다양성조차 패턴화되고 자기만의 감각을 갖지 못하게 되는 사회이다.

- 2019. 1. 28,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여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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