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그리고 힘겨운 인정 투쟁

by roads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명절이 지났다. 명절이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대를 어우르는 가족의 만남이 드물어지지만 명절에만 이루어지는 만남조차 불편하다. 그 불편은 종종 일방적이다. 명절은 여성과 젊은 이들에게는 고욕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이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대우를 받는 시간이다. 아직도 친족관계에서는 이런 불편한 질서가 지켜지고 있다.


명절 전에 시니어 식당에 갔다. 이 식당은 한 교회단체가 운영하는데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나쁘지 않아서, 가까이 이사한 후로 종종 가게 되었다. 점심시간에는 식당의 좌석이 꽉 찰 정도이다. 벌써 그 곳을 다닌 지 5년이 되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몇몇 분은 바뀌었으나 몇몇 분은 아직도 일을 하신다. 그런데 음식 맛이 달라졌다. 그리고 서비스도 조금 변했다. 어느 때는 간이 전혀 되지 않고, 어느 때는 설익은 음식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식탁 위에 놓인 고추장이나 장으로 손님이 직접 간을 해서 먹는 메뉴를 선택하곤 했다.


“이곳은 친절하지 않네.” 점심을 같이 하러 간 지인이 말했다. 그렇다. 그들은 얼굴이 환하지 않다. 인사도 없다. 화가 난 표정처럼 보인다. 손님 대우를 못받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지인의 말에 난 반사적으로 말했다. “저분들은 노동하는 것도 힘든데, 친절을 기대하지 말자.” 이 말에 식사를 같이 온 지인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에 내 지적질로 시무룩해졌다.


노인들의 얼굴은 근육이 내려가고 주름이 깊어지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표정의 문제가 아니다.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홀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서빙할 때 팔의 근육도 위태롭다. 그렇다보니 온 근력을 모아 식당일을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온 힘으로 하는 노동에 환한 웃음과 말투를 갖기가 쉽지 않다.


이런 말을 하고 나니 걱정이 앞선다. 노인들 일자리가 더 없어질까봐. 노인들 노동력에 대한 의심은 최근에 더 심해졌다. 경제위기 속에서 노인들은 경제적 잉여인간으로 취급되고 있다. 생산성과는 먼 존재, 세금이나 축내는 존재로 추락했다. 혐오가 아니라고 하지만 무의식 중에 노인들은 불편한 존재가 되고 있다. 시민에게 소비자 권리만이 남은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 불편함은 혐오의 다른 표현이다.


왜 나는 식당에서 불쑥 그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말을 한 후 최근에 내가 노인 문제에 예민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자신이 그 측에 가까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노년층에 대한 시선이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연민, 동정이 아니라 내 문제가 되었다. 고백을 하자면 난 내가 나이듦을 부정하려 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못지 않은 의식과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노년층에 대한 무심코 내뱉은 농담끼 섞인 비하 표현에 대해서도 같이 웃으며, 마치 개별의 문제인 듯 보이려 했다.


한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이 있다.“"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출신학교는 글자에 불과하지 않는 (현실)." 드라마 속에 인물들이 학력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대사 자체도 차별이다. 무지에서 오는 차별이다. 오히려 학력 차별은 쉬쉬한다. 그것이 차별이며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가장 공공연히 진행되는 일상적 차별의 하나가 나이에 대한 것이다. ‘어려서’, ‘젊어서’하며 차별을 한다. 노인들은 역으로 차별을 받는다. 이렇게 나이 차별은 상호적이다. 그래서 저항도 없다. 노인들이 일상에서 혐오와 마주쳐, 화를 내면 까칠하고 뻔뻔스런 노인이 되어 더욱 고립될 뿐이다.


예전 전통사회에서는 ‘나이듦’이 이런 대우를 받지 않았다. 세월이 주는 경험, 지혜가 인정받았었다. 그런데 나이듦에서 오는 경험, 지혜가 가치가 없어졌다. 굳이 가치가 있다면, 그 경험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상이 될 뿐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기록물이 된다. 초고속으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원하는 지식은 그들이 아니라 청년층에게서 나온다. 어쩌면 효율성, 생산성의 측면에서 인정받지 못함이 당연해 보인다.


능력 인정은 차치하고라도, 늙은 몸으로 사는 것은 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상 활동 자체가 젊을 때보다 힘이 들어간다. 느리게 보이는 걸음은 온 에너지를 모아서 한발 디딛는 것이다. IT 혁명이라는 시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일상 행동, 인간관계 확장에 디지털 기술이 동원된다. 특히나 비대면 시기에 신기술에 대한 적응이 요구되었다. 적응하기 위해 벅벅되다 보면 뇌의 문제까지 의심받는다. 또한 소비자로서 존재 가치조차 전세대 중 가장 낮다. 경제적 자원을 노년층에게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시장조차 그들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재래시장에서도 무인단말기가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그들을 고객으로 인정하는 곳은 노인복지단체, 관련 기업뿐이다.


힘든 인정투쟁

대선이나 극히 정치적 격돌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세대간 갈등이라는 이슈가 불을 붙는다. 그런데 이도 지나간 이슈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청년층을 끌어안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대선을 경과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청년층의 불안을 흡수해서, 그것을 혐오의 방향으로 확대하는 과정이 보여줬다. 그들의 불안이 의제화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인구학적 이슈와 결합하여, 기성세대를 ‘미래를 약탈하는 세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 반증 하나가 국민연금 고갈론이다. 현재 청년층이 수혜자가 될 때는 국민연금이 고갈이 되어, 청년층이 손해를 본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 위기가 맞는다하여도, 제도적 보완에 눈을 돌리지 않고, 손쉽게 노년층을 미래 약탈 세대로 규정함으로써, 노년층에 대한 혐오는 높아지고 있다.


노년층은 이러한 세태가 당황스럽다. 노동능력, 사회적 가치 측면으로 인정되는 나이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노동능력을 벗어나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노동하는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취했거나, 그에 대한 계획을 할 나이가 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꿈 같은 말인가? 한국의 복지시스템이 그렇게 한가하게 놔두지 않는다. 유럽의 노년처럼 임금노동을 떠나,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노동능력이 있음을 힘겹게 보여줘야한다. 인정을 받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인정은 상호적인 것이다. 인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 때 인정받는 것이다.


비노년층은 나이듦이 만드는 변화를 잘 모른다. 무지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 사실 노년층을 자세히 보려,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들에게서 피하고 싶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로부터 불안, 추함이 오염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늙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내 주변 지인들이 나와 같이 노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들은 고민은 주변 특히 가족에게 폐가 되지 않길 희망한다. 그런데 그 희망을 이룰 수 있을까? 또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연구를 한 그린커 교수는 한국 영화 ‘말아톤’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진정으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독립이나 자율이 아니라 의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린커 교수는 의존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장애에 따른 수치심과 불편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글은 장애에 대한 글이다. 그러나 노년층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왜냐하면 나이듦은 비장애인이었어도 장애인으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장애지만 그 장애들이 쌓이고 영구화되는 것이 나이듦이다.


나를 포함한 연령대의 사람은 우선은 스스로 노년층임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적·신체적 약자가 된 것을 불편하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의존을 요구하는 것이 권리임을 알 필요가 있다. 다만 그 의존은 가족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년층이 힘들어지는 것은 그 의존을 가족에게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성이란 기준을 벗어난 인정, 새로운 사회적 기준의 상호인정을 만들어 가야한다. 그 중의 하나가 서로 이해하는 인권교육이다. 그러면 노인을 향해 무심코 내뱉는 부정적 말에, 그것이 차별이며 혐오라고 지적하는 나의 피곤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