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으로 일군 한 평생
작년 이맘 때에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경비노동자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였다. 책을 읽으면서 경비노동자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 청소노동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경비노동자들이 일하는 곳 주변에는 보이지 않게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걸레를 들고 구부린 자세로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조건은 임계장보다 나을까?
“오로지 내 노력으로 살아온 거야”
노년알바노조준비위원회가 엮은 책, <노동으로 일군 한평생>의 부제는 ‘70대 여성청소노동자들의 인생 이야기’이다. 9명의 70대 여성이 짧게 구술로 자신의 인생을 말하고 있다. 정말 제목처럼 노동으로 일군 평생이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 대신에 집안일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10대 후반부터는 남의 집살이, 공장생활 그리고 결혼 후에는 가사노동과 경제적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청소일을 하면서 그 일을 잃을까 걱정하는 노년.
아마도 이런 이야기는 젊은이들에게 우중충하고 신박하지 않은 신세한탄으로 들릴 수 있다. 그리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증언들은 피할 수 없는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리이다. 그리고 신세한탄을 넘어 다른 걸음을 내딛는다.
소위 말하는 부모 빽, 남편 빽도 없이, 오로지 자기 노동에 의존해서 살아온 인생들, 그럼에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어디든지 가면 꼭 좋은 사람을 만났어요. 사람들이 저더러 인덕은 있다고 그래요”라고 말한다. 자신을 가난하게 만든 사람과 세상이 있음에도 그것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이 인덕이 많다고 하는 고운 사람들. 그리고 우뚝 서는 사람들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다양한 차별에 노출된 피해자를 넘어 다른 세상을 열어가는 존재들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노조에 가서 이야기했지. 우리들만 위해서 있는 거잖아.”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병의원 종사자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우리 사회가 감사를 표하는 영웅적 노동 종사자는 대부분 의료인이다. 그런데 병의원에서 전염병과 싸우는 보이지 않는 많은 필수 노동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청소노동이다. 이들은 평상시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과 대부분 마주치지 않는 시간, 새벽에 일을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건강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일을 한다. 노동이 수행되고 있는 것이 보여도 못 본 척 외면당하는 투명인간의 노동, ‘유령’이다.
이들은 큰 빌딩, 학교, 병원에서 일을 해도 용역회사 소속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다 그리고 용역회사가 바뀌면 수습기간을 다시 거쳐야 한다. 또한 그들은 청소에 사용되는 각종 독성을 포함한 청소물품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청소용품이 만들어내는 유해물질에서 최소한으로 방어해주기 위해 필요한 마스크, 장갑 등 청소용품을 노동자들이 준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급여 계산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주는 대로 그대로 받는다. 주말 노동에 대한 수당도 없고, 기타 노동법이 보장하는 기준은 언감생심인 경우가 많다. 재계약을 빌미로 용역회사는 갈취도 서슴치 않는다.
용역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하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 대우도 주목해야 한다. 직원식당은 사용할 수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했다. 휴게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많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이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적도 있다. 공공성, 공익을 외치는 곳에서 일을 해도 그들은 공익의 외곽에 위치한다. 용역회사로 노동자의 처우를 모두 떠맡기는 학교, 병원 등 공공 단체의 무책임성과 비도덕성이 청소노동을 더 유령노동으로 만든다.
그런 유령노동, 투명노동에서 벗어나 그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노조가 없을 땐 저희가 무슨 말을 해도 코웃음도 안 쳐요. 저희를 유령취급했다고.” 노동조합을 모르고 살아온 평균 60대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데모를 시작했다. 홍대 노동자로부터 연세대 노동자 그리고 최근에 LG 트윈타워 노동자들이 그 주인공들 중 하나이다. 이제는 자신의 급여 명세서에 의문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노동조합을 찾아간다. “노조 없는 데는 너 그만둬 하면 그만둬야 해요.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노조가 나를 보호해주는 거야. 노조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슬쩍 빠지던 수당도 제대로 받고. 월급이 오르고. 휴게소도 생겼다. 단결하여 스스로 둔둔한 힘을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아졌다. “제일 하바리 직업이고 못 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인 줄 알았거든.” 이제는 자신이 청소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은 나이 먹어도 일을 하면서, 우리는 왜 잘러?”
그런데 평균 65세, 70세 이후에 이들은 노동조합이 있는 일터를 떠나야 한다. 일터의 정년 규정이 그렇고, 나이든 노동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65세 이상이 되면 일을 찾기 힘들다. 이제는 용역회사 소속도 아닌 단기 알바로 일해야 한다. “백세 세상에 65세에 잘려서 놀고 있으면 뭐 하냐고.”
이들은 청소노동을 계속하길 원한다. 경제적 절박함이 큰 이유일까? “일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하고 그러는 거지. 내가 학교를 다녀서 동창이 많기를 해? 난 동창이고 뭐고 없잖아요. 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여적 이렇게 살아 왔잖아요.”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동창 모임도 없다. 마을에서 친구들을 만들고 어울릴 정도로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았다. 그들은 줄곧 일을 해왔다. 그런데 그 일이 임금이라는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우정을 준다. 9명 중 대부분이 혼자 산다. 가족이 있어도 그들은 허전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불안하지만 더 큰 불안은 고립이다. 일터는 바로,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일자리는, 그들에게 쓸쓸함을 벗어나게 하는 공간이며 삶의 활력을 주는 곳이다.
“이제는 바라는 것도 없어. 내 몸 건강하고 자식들한테 폐 안 끼치고 살고 싶다 이 생각뿐이야. 자식들에게 손 안벌리고 신세지지 않는 게 부모된 도리잖아.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 9명의 70대 여성은 격변의 사회를 통과해 왔다. 이들이 살아온 좌표의 배경으로서 한국의 사회문화적 변화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이들에게는 예전의 어머니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보인다. 독거노인, 청소노동자라고 연민의 눈으로 보지 말기를. 마지막까지 독립인으로서 삶의 자세를 견지하려는 태도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