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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욱 Dec 27. 2017

이브 클라인과 색채상표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12편

이브 클라인 <IKB 191>

이브 클라인(Yves Klein, 프랑스 발음으로는 이브 클랭)은 8년간의 짧은 작품활동 끝에 서른 넷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바디 아트(body art)의 선구자로, 팝 아트(Pop art),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큰 영향을 준 화가이다.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이브 클라인은 미술교육은 거의 받지 못 했지만, 일본에서 유도를 배워 유도로 돈을 벌기도 한다.

이브 클라인

이후 파리에 정착하여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그림과 같이 커다란 캔버스를 하나의 색으로 균일하게 칠하는 방식이며, 특히 스스로 안료를 섞어 만든 청색을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IKB)로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 색이야말로 비물질적인 형이상학적 특성을 가지고, 무한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빨강, 오렌지색, 녹색, 금색 등의 다른 색깔로도 작업을 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IKB이다. 이 색깔은 이브 클라인과 에두아르 아담(Edouard Adam)이라는 파리의 미술상과 함께 만들어 낸 것으로, 로도파 엠에이(Rhodopas MA)라는 푸른색 안료에 고착액인 폴리비닐 아세테이트(polyvinyl acetate)라는 합성 레진을 이용하여 만든 색이다. 이러한 방법에 대한 특허를 이를 프랑스 특허청에 등록(No. 63471)까지 하게 된다. 그는 이 색을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라고 하였으며, 거의 200여 점에 달하는 IKB 작품을 만들게 된다. 그의 IKB 작품에 붙은 숫자(앞의 그림에서 '191')는 그가 죽은 후 미망인이 작품의 구별을 위해 붙인 숫자이다.


이브 클라인은, 1960년에는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갤러리에서 <청색시대의 인간측정학(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라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회화용 붓이 아닌 나체의 여성들을 붓의 대용으로 삼아 청색 안료를 몸에 바르고 온 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 때 클라인 자신은 7명의 악사에게 연주를 시키면서 지휘를 한다. 음악 역시 그가 작곡한 20분간 하나의 음만 연주하고, 20분간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는 <심포니 모노톤-정적(Symphonie Monotone-Silence)>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이후 존 케이지(John Cage)가 <4분 33초>에서 피아니스트가 자리에 앉아 4분 33초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 준 것이나(이것은 몇 년 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각종 퍼포먼스를 통해 기행을 보여 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브 클라인의 <청색시대의 인간측정학> 퍼포먼스 결과 나온 작품


그의 전시회를 보고 영향을 받은 여러 예술가들은 1957년 제로그룹(Zero Group)을 만들게 되는데, 오토 피네(Otto Piene), 하인즈 마크(Heinz Mack) 등이 주도가 되어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주도하고, 이후 다양한 구성주의 경향의 신경향(New Tendency) 운동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신경향 예술은 작품의 비개성화, 새로운 재료와 과학기술의 활용, 빛이나 소리, 실제 움직임 등의 직접적인 자극을 이용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나 마크 로스코(Mark Rotheko)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주의나 독일의 표현주의나 다다이즘(Dadaism)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정적 추상을 강조하는 앵포르멜(비정형, Informel)과 같은 흐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브 클라인이 차지하는 위치는 <1945년 이후의 미술운동>의 저자인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의 "유럽의 네오 다다이스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브 클라인임에 틀림이 없다. 클라인이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무엇을 했는가, 즉 행위의 상징적 가치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예술가 중 하나이다. 그는 예술가는 단 하나의 진정하고 완전한 창조를 이루어내는 존재하고 생각하는 최근의 경향을 보여주는 예술가이다."라고 한 데서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의 IKB 작품들은 이후 2010년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소설 <제로 히스토리(Zero History)>의 주인공이 입고 있는 수트의 색깔로 등장하고, 호주에서는 "이브 클라인 블루(Yves Klein Blue)"라는 락 밴드가 등장하는가 하면, 1991년 만들어진 퍼포먼스 아트 그룹인 "블루 맨 그룹(Blue Man Group)"이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블루 맨 그룹의 퍼포먼스

그러면 다시 이브 클라인의 처음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이 그림을 그린 안료는 프랑스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였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면, 어떤 단일한 색깔도 상표가 될 수 있을까? 이브 클라인의 IKB 같은 경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2007년 개정 상표법에 따르면 색채만의 상표를 인정하고 있다. 상표는 나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를 식별력이라고 한다)이 있어야 상표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고, 상표권으로 등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이라는 상표를 보면, 소비자는 아이폰, 아이패드, 컴퓨터 등을 만드는 애플사에서 만든 것이라는 인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이 상표의 식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식별력이 없는 상표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해당 제품의 일반적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커피에 'Caffe Latte', 복사기에 'Copier', 포장용 필름에 '랲' 등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해당 제품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보통명칭에 해당하여 이를 상표로 등록할 수 없다. 또한, 관용적으로 사용되거나 상품의 품질이나 원재료 등을 나타내는 말도 상표로 등록할 수 없는데, 예를 들면 식당에 '가든', 직물에 'TEX', 꼬냑에 '나폴레온', 신용카드네 'EasiCard' 같은 것들이다.


또한, 유명한 지역의 명칭인 '종로', '서울', '경주', '뉴욕'과 같은 것은 상표로서 식별력이 없고, 어느 한 사람에게 독점적인 사용을 허락하는 것이 공익에 반하기 때문에 상표로서 등록받을 수 없다. 따라서 '종로학원', '서울막걸리', '경주빵'이나 '뉴욕제과'와 같은 것은 상표로서 등록받지 못 하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 더 코카콜라 컴퍼니가 커피에 'GEORGIA' 출원하였지만 거절되었고, 이에 불복하여 특허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한 결과 2011년 최종 거절이 확정된 바 있다. 'GEORGIA'가 커피의 주요 산지는 아니지만 일반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품의 산지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예로 흔히 있는 성(姓)이나 명칭도 상표로 등록을 받을 수 없는데, 예를 들어 '김&박 사무소', '강씨공방', '김여사부대찌개"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서 '원칙'이라고 한 것은 예외적으로 등록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특정의 사업자가 사용하여 소비자에게 어디 제품인지 혼동 없이 누구의 상품인지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으면, 원래는 식별력이 없는 상표이나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취득하였다고 인정하여도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므로 등록해 준다. 이러한 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2008년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20여 년간 등산화 등의 상품에 사용하여 온 'K2' 상표의 경우 그 상표의 출원 전에 그 상표가 누구의 상품을 표시하는지 현저하게 인식되어 상표로서 등록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K2 상표

그러면 색깔만으로 상표등록을 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일정한 조건이 만족되면 상표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므로, 등록을 허용하는 것이 선진국들의 태도이다. 원래 색채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구별이 어려울 수 있고, 어느 한 사람에게 독점을 인정하다 보면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 부족해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등록을 해주는 것이 불합리하고 공익에 반한다는 것이 이전의 입장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거래계와 소비자의 입장에서 특정한 출처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단일한 색채에 대해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보면, 첫째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용에 의한 사후적인 식별력(secondary meaning)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색채 자체에는 식별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획득하여야 한다. 또한 두 번째로 색깔 자체에 어떤 기능성이 있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색깔에 특별한 기능이 있어서 상표등록이 되지 않은 경우를 보면, 분홍색의 외과용 붕대는 백인의 피부색과 비슷하여 기능적이라고 한 경우, 배탈치료를 위한 약의 경우 이 색깔이 정신적으로 안정을 가져다 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기능적이라고 한 경우 등이 있다. 


그러면 이렇게 단일한 색채에 관한 분쟁을 살펴 보자.


어떤 대표적인 색깔은 관련 업계에서 모두 사용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관련 제품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모두 쓰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와 관련된 분쟁이 미국에서는 많이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1995년 퀄리텍스(Qualitex)사가 녹금색(gold green)의 다림질 패드에 관한 단일 색채 상표에 관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미국에서도 단일한 색채를 상표로 등록해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선회한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퀄리텍스의 녹금색 다림질판

이 판결에서 법원은 색채에 대해 소비자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혼동가능성(likelihood of confusion)은 침해 여부를 가릴 때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보았고, 색채를 상표로 인정하다 보면 사용할 수 있는 색깔이 점점 없어진다는 색채고갈론(color depletion theory)에 대해서는 단일한 색채를 특정 상품의 상표로 사용하여도 다른 많은 색깔을 대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아, 단일한 색채에 대한 상표등록을 인정하게 된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색채상표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 예를 들어 본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색채상표

먼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의 빨간색 구두 밑창이다.


이 상표는 프랑스의 고급 하이힐을 만드는 회사인 크리스찬 루부탱이 등록한 상표(상표 등록 US 3,362,597)로, 등록된 색채상표는  '차이니스 레드(Chinese Red)였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빨간색 바닥을 가진 하이힐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출연자가 신어서 더 유명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붉은 색의 구두 밑창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자신의 춤 솜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처음으로 신기 시작한 것이었고, 유럽의 왕실에 유행이 되기도 한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크리스찬 루부탱이 1992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미국에 2007년 상표로서 출원하여 2008년 등록을 받게 된다. 이 출원의 설명을 보면, "The color(s) red is/are claimed as a feature of the mark. The mark consists of a lacquered red sole on footwear. The dotted lines are not part of the mark but are intended only to show placement of the mark."라고 기재되어 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장면 중 크리스찬 루부탱을 신은 주인공들의 모습

그런데, 이와 같은 색깔의 바닥을 가진 하이힐을 이브 생 로랑(Yve Saint Laurent)이 만들어 팔자 크리스찬 루부탱이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2011년 뉴욕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 소송에서 1심의 지방법원은 크리스찬 루부탱의 상표는 기능적이서 등록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색깔이 장식적이고 미학적인 필수요소가 되는 패션 산업에서 단일 색채의 상표등록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하여,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다. 이에 크리스찬 루부탱이 항소를 하게 되고, 제2연방항소법원은 위에서 언급한 퀄리텍스 판례와 1심의 판결이 부합하지 않아, 1심 판결을 파기하게 된다. 패션업계라고 해서 다르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크리스찬 루부탱의 상표는 살아남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 루부탱(왼쪽)과 이브 생 로랑(오른쪽)의 하이힐 비교


다른 예를 들어보면, '티파니 블루(로빈 에그 블루, robin-egg blue)'에 대한 상표권이다.


널리 알려진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Tiffany & Co.)의 푸른색 박스에 대해 등록을 한 것인데, 이 회사는 박스에 대한 색채상표(US 2,359,351)를 2000년 등록받았고, 이 외에도 같은 색깔을 쇼핑백(US 2,416,795), 카탈로그의 표지(US 2,416,794)에 등록을 받았다. 티파니는 자신의 상표권을 가지고 비슷한 색깔을 사용하는 보석회사 및 소매상을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된다. 티파니는 위의 크리스찬 루부탱 사건의 항소심에서 루부탱을 지지하는 법정 의견(amicus curiae)을 낸 바도 있었다. 미국 소송에서는 관련 업계나 전문가, 단체 등이 해당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법원에 낼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며 이를 아미쿠스 쿠리아이(amicus curiae)라고 한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상표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티파니 자신도 상표권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티파니의 티파니 블루 박스

또 다른 예로 2017년 10월 17일 미국의 켄터키 연방지방법원은  미국의 농기계 제조업체인 디어 앤 컴퍼니(Deere & Company)가 제기한 상표권 침해소송에서 디어의 손을 들어 주었다. 디어는 녹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농기계 제품에 대한 상표권 침해를 주장하며, 켄터키 주에서 씨앗을 뿌리는 장치를 제조하는 핌코(FIMCO, Inc.)를 상대로 소송을 하였고, 핌코의 장치가 역시 녹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디어의 색채 상표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디어의 녹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상표는 1960년대말부터 유명해졌기 때문에 핌코가 이러한 디어의 유명세를 악용하여 고의적으로 같은 색깔을 사용하여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주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핌코는 이러한 색깔을 사용해서는 안 되므로 침해금지명령을 하는 동시에, 이러한 침해행위 중지에 대한 계획은 60일 내로 법원에 제출하라고 명령한다.

디어사의 상표


핌코의 장치

우리나라에서는, 하리보(Haribo)의 회사인 리고 트리이딩스 에스 에이(RIGO Tradings S. A.)가 과자류를 제품(지정상품)으로 하여 골드 컬러(gold color)를 2016년 6월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색채상표로 등록받은 바 있다. 하비로는 젤리의 일종인 거미 베어(gummy bear)를 1922년 개발하였고, 이 제품을 '골드-베어스(Gold-Bears)'라는 상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판매하여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 색채 상표와 관련한 침해소송은 아직은 없는 것으로 보이나, 향후에는 빈번한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비로 골드-베어스 제품


이제는 기존의 전통적인 상표의 개념을 넘어 색깔이 상표가 되는 시대이다. 이브 클라인은 당시에는 상표로 색채를 등록할 수 없었기에 특허로서 안료의 제조방법을 특허받았지만, 만일 현재의 상태였다면 상표로서도 등록받지 않았을까? 게다가 특허는 등록받으면 출원일 후 20년이 되는 때까지 존속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으로 들어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된다. 하지만 상표는 10년의 존속기간이 있으나, 이는 갱신이 가능하여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상표권 등록의 대상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움직이는 동작상표(2007년 도입)나 입체상표(1998년 도입), 홀로그램 상표(2007년 도입), 소리상표(2012년 도입) 및 색채상표(2007년 도입) 등이 모두 인정되고 있어, 이제부터는 상표에 대한 치밀한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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